교도관 발자국 소리에도 심장 멈칫



지난 9월 14일, 본지 기자는 정남규 씨를 접견했다. 당시 그는 시종일관 불안한 눈빛과 행동을 보이며 이상증세를 보였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용서받을 수 없다. 용서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해 불안한 심리상태를 내비쳤고, 삶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희대살인마’도 두려웠던 ‘사형’
 
그리고 약 두 달 뒤인 11월 22일. 정씨는 서울구치소 자신의 독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지난 11월 21일 오전 6시 35분쯤 독방에서 쓰레기봉투를 꼬아 만든 1m길이의 끈을 이용, 자살을 시도했고 이를 교도관이 발견해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22일 오전 2시 35분경 상태가 악화돼 사망했다. 사형수가 구치소에서 자살한 것은 지난 2007년 2월 천안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사형수 김모씨가 침낭줄을 창살에 매 목숨을 끊은 지 2년9개월 만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이 한꺼번에 ‘집행’ 당한 뒤 이후 10년 넘게 사형 집행이 없어 국제사회에서는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정씨의 사망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59명이 됐다.

언론과 법무부 등은 정씨가 ‘사형 집행 재개’에 대한 소문과 그로인한 두려움 때문에 자살을 결심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구치소에서 발견된 정씨의 일기장 등엔 유서처럼 보이는 글이 쓰여 있었다.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제도 문제가 다시…”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등과 같은 메모가 일기장에 적혀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사형수인 정씨 역시 최근 ‘나영이(가명) 사건’ 등으로 끓어오른 ‘사형 집행 여론’을 흘려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검거 직후 재판을 받을 때까진 “빨리 사형해달라”며 극도의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최근 흉악범죄와 관련된 보도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여기에 사형제 시행 가능성까지 자주 언급되자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정부는 사형 집행과 관련해 과거와는 달리 사뭇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강호순 씨가 붙잡히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사실상 사형 집행을 공식 촉구하기도 했다. ‘사형수’인 정씨 입장에선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12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형제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형수들의 심리상태는 정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방 소재 모 구치소 교도관은 “10년 넘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폐지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형수들의 심리상태는 그야말로 피폐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더구나 사형 집행 날짜가 정확히 정해진 것도 아니라서 1분1초가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시간인 셈이다. 교도관들의 발자국 소리에도 숨이 멎는다는 사형수들의 표현처럼 그들은 매일매일이 극도의 예민 상태”라고 전했다.
 
죽음의 공포 ‘내일이 없는 이들’
 
실제 법무부 측은 사형수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한 언론사의 ‘사형 집행장 취재’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취재를 위해선 사형 집행장과 그 주변을 청소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했다간 전국 교도로소 ‘사형이 집행된다’는 소문이 퍼져 사형수들이 극도로 흥분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통하는 조성애 수녀는 최근 대구가톨릭대에서 ‘사형수들의 삶’이란 주제로 한 특강에서 “사형수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내가 죽는 게 아닌가’하며 가슴을 졸였다가 해가 지면 ‘오늘은 살았구나’ 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사형수들은 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여서 교도소가 아닌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일반 수용자 여럿이 섞여 사는 혼거실과 달리 4제곱미터 넓이의 독방에서 생활한다. 인권 침해에 대한 논란 탓에 CCTV는 설치되지 않다. 물론 정씨의 방에도 CCTV는 없었다. 전국 구치소 중 독방내부를 감시할 수 있는 CCTV가 설치된 곳은 열 곳에 한곳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노역을 하는 교도소와 달리 구치소에선 하루 30분 운동을 제외하곤 달리 하는 일도 없다. 대부분 독방에서 책을 읽거나 소일거리를 하는 것이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오랜 독방생활에서 생긴 무력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은 정씨의 경우처럼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구치소 관계자에 따르면 정씨의 자살 이후 현재 수감 중인 사형수들의 동요가 극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 구치소 관계자는 “강호순 사건 이후 사형 조기 집행 논란이 인데 이어, 정남규까지 자살하면서 사형수들이 더욱 긴장하고 있다”면서 “일부는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형이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사람들인 탓에 가뜩이나 감정의 기복이 심한데, 최근들어 ‘사형 집행 재개’ 소문이 이어지고 있으니 두려운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관계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모 지역의 한 사형수는 정씨 자살 이후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고, 또 다른 사형수는 방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종일 뭔가를 중얼거리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 악몽에 시달린 듯 소리를 질러 교도관들의 잠을 설치게 하는 것은 다반사라고.
모 구치소 관계자는 “현재 구치소 내에 비상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사형수들에 대한 관리 및 심리치료 등이 강화됐고, 종교단체 측에 사형수들을 위한 특별방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형수들의 불안감과 공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그들의 죄는 엄격히 다뤄져야 하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안타깝고 괴로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한편 사형수 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형제 존폐에 대한 논의도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이르면 이달 중순쯤 최종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정남규 검거한 양재호 총경
“사이코패스로 기억한다”
흉기로 머리를 내리치고, 전화 걸던 여고생을 칼로 찌르는 등 서울 수도권 일대에서 무고한 시민 13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정남규(40) 씨. 그는 11월 22일 서울구치소에서 무수한 의문점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부 종교인들을 제외하고 정씨를 애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애도와 별개로 그의 뜬금없는 자살소식에 충격을 받은 몇 명의 인물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2006년 정씨를 검거한 양재호 대전경찰청 정보통신담당관이다.

당시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 근무했던 양 담당관은 정씨를 불안정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던 ‘정신질환자’또는 ‘사이코패스’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정씨를 검거할 당시 그의 집에서 성폭행이나 살인 등의 기사를 스크랩해 놓은 책자를 발견했다”며 “정씨는 기사를 분석
한 뒤 더욱 치밀한 살인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양 담당관은 “정씨는 범죄 후 경찰에 잡히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세 차례씩 마라톤을 해오는 등 몸 관리에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며 “검거 직 후 정씨는 ‘이렇게 잡힐 줄 알았다면 힘들게 마라톤 연습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투덜거렸다”고 혀를 내둘렀다.

정씨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 폭력에 시달려 서서히 ‘살인자 인격’이 형성됐으며, 누구나 이런 환경에서 자라왔다면 자신과 같은 살인자가 됐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찬>

 
 ‘사형수 대모’ 조성애 수녀 
“정씨 자살, ‘죄책감’ 때문”

20년 가까이 사형수들에게 용돈과 음식을 전달해주고 회개를 권유해온 ‘사형수의 대모’ 조성애 수녀는 정씨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이다.

조 수녀는 매주 화요일 서울구치소를 찾아가 사형수들의 회개에 힘쓴다. 고 정남규 씨는 2년 전 개신교로 회개했지만, 매주 화요일 행해지는 개신교 모임에 참석한 적은 없어 조 수녀는 실제로 그를 만난 적이 없다. 정씨의 소식은 다른 사형수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뿐이다.

조 수녀는 “다른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정씨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구석에 숨어있었다”며 “부끄럼이 많고 늘 죄책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항상 불안한 듯 무엇인가에 쫏기는  모습이었고, 자신의 속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정씨는 동료 사형수들에게도 ‘나는 범죄자니까 고통을 받아야 된다. 아픔을 잊으면 안된다’라는 말만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수 개월간 독방에서 지내며 폐쇄적인 생활이 습관화 됐고, 이에 따라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한 부담감, 거부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갑작스런 정씨의 자살소식은 조 수녀에게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열심히 종교 활동하고 그 동안의 죄를 조금씩 뉘우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정씨의 자살을 예견했다는 말투다.

조 수녀는 정씨의 자살원인을 미약한 심리상태나 사형존폐 여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죄책감 때문이었다.

조 수녀는 “사형제 부활 논란은 계속 있어왔다. 정씨가 노트북에 불안감에 대해 적어놓은 메모는 상당히 오래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그것을 갑작스러운 자살과 연관시킬 순 없다”며 “그는 항상 자신의 과오에 대해 괴로워했다. 자신은 용서받으면 안된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정씨의 내면에는 이런 어두움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본다. 자기희생을 하며 죄를 뉘우치고 살아가는 사형수도 많은데, 정씨는 스스로 기회를 포기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 수녀는 사형 재개 여론이 다른 사형수들에게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특히 정씨가 자살한 이후여서 걱정은 두 배가 됐다.

조 수녀는 “사형수들도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사람을 해쳤어도 스스로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겁을 먹게 된다”며 “사형수들은 사형 재개 여론 이전, 또 정씨 자살 이후 더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죄를 뉘우치고, 자기희생을 통해 과오를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