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소속 대전시의원들이 11월30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달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중학교 '역사' 1∼2, 고등학교 '한국사') 2종을 공개하면서 국정교과서에 대한 논란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애초 교육부가 근현대사의 비중을 40% 이하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새 국정교과서는 근현대사의 비중이 45%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서술이 늘어나 ‘박근혜 교과서’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념 갈등을 조장할 만한 표현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논란의 씨앗이 곳곳에서 발견 되고 있다.

이에 교육부를 제외한 여야 정치권과 학계·시민사회 할 것 없이 각계각층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야권은 편향성 문제를 집중 질타하며 현장검토본 단계에서 당장 폐기하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즉각 퇴진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새누리당도 이례적으로 “당 차원에서 국정화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서울에선 국정교과서 검토 자체를 전면 거부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역사교사모임'도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처음부터 시작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이라며 "해석의 다양성과 비판적 사고를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라며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에 대해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학계의 권위자로 집필진을 구성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교육부가 오는 23일까지 현장 의견을 수렴해 국정화 추진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한 만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어떻게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교과서의 분량은 기존 검정교과서의 평균 분량보다 20% 정도 줄어들었다. 학습부담을 경감시킨다는 취지에서다. 반면 근현대사 서술 부분은 늘어났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경우, 연표 등을 제외한 전체 293쪽 중 133쪽(45%)이 근현대사다. 통상적으로 근현대사 부분은 이해관계자 등이 살아있는 경우가 많아 평가하기에 부적절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논란의 불씨는 곳곳에 있다. 대표적으로 기존 검정제에서는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국정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변경한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갈등이 첨예하다.

교육부는 “대한민국은 어느 한순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1919년 3·1운동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독립과 건국을 위한 모든 노력이 광복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고 친일 건국세력을 미화하려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밖에도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긍정적 설명이 크게 늘어났고 5·16 군사정변의 경우 설명과 함께 군사정변의 공약까지 상세히 실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4개월 만인 지난 2013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정교과서 집필이 급물살을 탄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저의를 두고 역사학계의 반발이 거세다.

오류 논란도 있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에서 사실로 인정할 수 없는 오류 역시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안중근·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들의 직책이 잘못 표기돼 있다거나 고대사에서 시기가 안 맞는 부분이 발견되는 등 100건 이상의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갈수록 커져가는 논란에 사법부도 나서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강석규)는 국정교과서 공개 사흘 전인 지난달 24일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교육부는 집필기준과 집필진을 공개했지만 논란은 더욱 커졌다. 집필기준이 바뀌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31명의 집필진 중 현대사 집필진 6명 모두 역사학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 이들 모두 보수성향을 띄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는 등 개정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충북지역에서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대안교과서를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우 충북교육감은 지난달 28일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와 관련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도교육청과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면 전북교육청을 중심으로 4개 교육청이 편찬 중인 보조교재를 학교 현장에 사용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정화와 검정제를 너머 자유발행제로 가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출판사가 자유롭게 교과서를 출판하면 학교에서 자유롭게 선택해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17개국이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OECD국가 중 유일하게 그리스만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다.

잇따른 반발에 직면한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국·검정 혼용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화를 밀어붙이기에 여론이 좋지 않고 그렇다고 애써 만들어놓은 국정교과서를 전면 폐지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성회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기획팀 사무관은 이에 대해 “교육부가 국·검정 혼용 방안과 국정화 1년 유예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23일까지 정해진 현장 의견수렴 기간 동안 의견을 받을 예정이며 현재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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