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주요 14개 대학 청소부와 경비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14년3월3일 고려대학교에서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사진=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경인지부)

초과근무ㆍ잡무 횡행…불이익 우려해 침묵만

학생들 “서글퍼”…학교 “법 규정 준수” 발뺌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2014년 3월3일. 서울 주요 14개 대학교의 청소부와 경비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열악한 처우에 대해 울분을 토해냈다. 그로부터 2년. 달라졌을까? 사회의 반짝 관심만 있었을 뿐 여전히 갑(학교)의 말을 잘 듣는지 여부에 따라 재계약이 결정되는 파리 목숨 같은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받고, 아르바이트생보다 열악한 식대와 각종 잡무에 시달리면서도 울분을 삼키는 그들. 각 대학은 “현대판 머슴”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마저 흘러나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열악

지난달 29일 오전 9시40분. 서울 동대문구 소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 대학 청소 노동자들은 교내 학생회관 식당에서 늦은 아침식사 중이었다. 학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1교시(9시) 이전에 강의실과 캠퍼스 등을 청소해야 한다. 그래서 식사가 늦는 편이라고.

이들은 이것저것 질문에 난색을 표했다. ‘인사상 불이익 등 피해를 볼까’ 두렵기 때문. 눈치만 살피던 한 50대 여성 노동자는 “휴게 공간이 옷만 갈아입을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쉬는 게 불편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청소 노동자들은 아침 6시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가 공식 근무시간이다. 하지만 초과 근무는 물론 용역회사와 맺은 근로 범위를 넘는 잡무도 수행했다. 낙엽치우기, 행사 뒤처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날 현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교내 건물 및 교정을 청소하는 것이 근로 범위지만 담장 넘어 낙엽을 묵묵히 치우고 있었다. 2명의 청소노동자는 한 시간 전까지 교내 건물과 교정을 치우고 나서도 쉴 틈 없이 일하는 중이다. 용역회사 직원이 종종 낙엽을 치우라고 지신한다는 귀띔이다.

청소노동자의 휴게실도 비좁았다. 13.2㎡(4평)남짓 공간을 9명이 번갈아 사용하고 있었다. 탈의실을 겸하는 이곳은 그나마 바닥에 열선이 깔려 있어 잠시나마 추운 몸을 녹을 수 있다.

박 모(60대/여)씨는 “9명이 교대로 이곳에서 쉬고 있다”며 “너무 좁다. 청소한 후 쉬는 게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김 모(60대/여)씨 역시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다”고 전했다.

한국외국어대 청소노동자(사진 왼쪽)가 지난달 29일 오전 13.2㎡(4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쉬고 있다. 같은 날 또 다른 장소에서는 한 경비원과 청소노동자(오른쪽)가 대학교 담장 넘어 낙엽을 치우고 있다.

냉가슴

이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아르바이트생 보다 못한 대우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인근 대학보다 적은 시급을 받는 것은 물론 시간외 근무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냉가슴 알듯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 대학에서 근무하는 용역업체 비정규직원은 105명. 이들의 기본 근로 계약은 1년으로 최저시급 6030원을 적용받고 있었다. 월급은 127만원 정도. 올해 최저임금은 월급 계산 공식에 따라 월 126만0270원이다.

김 모(60대/남)씨는 “그나마 2년 전 총파업 통해 최저시급이라도 받고 있는 것이다”며 “최저시급을 올려 달라고 했지만 원청인 대학과 하청인 용역업체는 꿈쩍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것이다.

한 달 식대는 2만원. 인근 대학의 1/3수준(28.5%)도 채 되지 않았다. 이를 20일로 나누면 하루당 1000원. 빵과 우유도 사먹지 못하는 액수다. 점심을 거르거나 자기 돈을 보태 교내에서 제일 싼 2500원짜리 음식을 사먹어야 한다.

그나마 이 식대도 올해부터 지급됐다. 인근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현재 7만원 정도를 식대로 받고 있다. 대학 구성원이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못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3000원 상당의 도시락을 근무 시간 식대로 제공받고 있다.

복리후생도 1년에 1회 토요일 야유회를 가는 것이 전부였다. 경비노동자도 청소노동자와 비슷한 처지였다. 초과 근무는 물론 교내 청소에도 동원되지만 그에 따른 보수는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학생들은 이들에게 감사와 서글픔을 느끼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생 류 모(28세/남)씨는 “강의실 및 캠퍼스에서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 감사하고 짠하다”고 말했다. 재학생 박 모(24세/남)씨는 “청소노동자도 학내 구성원이다. 고생하는 것만큼 임금을 받아야 한다”며 “최저시급은 학교 측의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발뺌

원청인 대학측은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발뺌’으로 일관했다. 청소노동자들이 관리 범위를 넘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원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홍보팀장은 “용역업체와 맺은 계약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있다”며 “청소는 교내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담장 밖은 청소 관리영역이 아니다. 담장 밖을 청소하라고 지시한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대학은 청소 경비 관련 용역 계약을 공개입찰로 진행하고 있다. 계약은 매년 갱신되지만 최근 3년간 한 업체가 계속 맡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노동법) 교수는 “1년 단기근로자도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관련법상 가산금을 포함한 연장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근로감독관의 근로감독을 강화해 법령 미 준수 등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리를 주장했다고 계약 해지 등 불이익을 준다면 형법상 처벌 대상이다”고 덧붙였다.

김윤수 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경인지부 조직부장은 “일부 대학은 청소노동자를 1시~2시간 연장 근로를 시키고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노조가 없는 현장에서는 근무 외 수당을 요구하면 재계약 시 불이익 받는 등 보복 우려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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