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과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에 이어 이제는 혼놀족(혼자 노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1인 노래방부터 인형뽑기기계 등 혼자 즐기기 좋은 놀거리를 모아놓은 이른바 ‘뽑기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1호선 외대앞역 앞에는 요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있다. 지하철 역사 인근에 새로 문을 연 ‘뽑기방’이다. 직원도 없이 널찍한 공간에 20여대의 인형뽑기기계만 설치돼 있을 뿐이지만 밤 낮 할 것 없이 젊은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밤에는 뽑기방의 밝은 조명과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지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뽑기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인형을 뽑으려고 모여든 청소년부터 혼자 지나가다 들른 행인까지 다양하다. 단돈 몇 천원만 있으면 혼자라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뽑기방’ 중에는 1인 부스에 들어가 마음껏 소리칠 수 있는 ‘코인노래방’과 결합된 곳도 있어 혼놀족들의 취향에 맞게 진화중이다. 외대앞 인근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염모(28/남)씨는 “심심한데 친구들 만나기엔 부담스러울 때는 뽑기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며 “혼자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생겨서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전무하던 ‘뽑기방’은 올해 1월~8월까지 전국적으로 157개 이상 생겨났다. 지자체에 등록되지 않은 곳과 변형된 곳까지 합치면 전국에 수천 곳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외대 앞 인근만 해도 최근 2군데가 생겨났으며 종로, 홍대 등 번화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혼놀족의 취향저격인 ‘뽑기방’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대부분의 점포가 무인으로 운영되다보니 청소년 관리 실태가 부실하다. 청소년게임제공업으로 등록된 뽑기방은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만 청소년의 출입이 허용되지만 무인으로 운영되다보니 단속할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후죽순 생겨나는 뽑기방의 운영실태를 관리당국에서 일일이 단속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게임위는 앞으로도 불법게임물의 시장유통과 사행적 운영폐해로부터 게임이용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게임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도록 전 임직원이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진화

인형뽑기기계를 모아놓던 뽑기방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간단하게는 인형뽑기기계와 코인노래방 부스가 결합된 형태부터 스크린야구·농구·사격 등 다양한 시설이 합쳐진 ‘게임장’까지 다양하다.

종로3가의 번화가에 위치한 한 게임장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줄을 서서 이용해야 할 만큼 이용객이 많다. 인형뽑기기계뿐만 아니라 스크린 야구, 미니농구대, 사격장 등이 있는데 모두 1000원~2000원이면 쉽게 이용가능하다.

산발적으로 생겨나는 뽑기방 이외에도 혼놀족을 위한 프랜차이즈 영업점도 성행하고 있다. 토이앱펀샵은 인형뽑기기계와 캡슐토이기계(돈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피규어·장난감 등이 들어있는 캡슐을 뽑을 수 있는 기계), 오락게임 등이 설치된 복합형 놀이 문화 매장이다.

최진영 토이앤펀샵 대표는 “토이앤펀샵은 전국적으로 70~8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며 “최근 3개월 새 뽑기방 형태의 사업장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에도 10건 이상 창업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점

뽑기방, 게임장의 인기만큼이나 우려스러운 점도 산적해 있다. 불법 뽑기방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게임물관리위원회는 9월 초부터 이에 대한 전국 실태조사에 나섰고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다.

개·변조 등 사행성 조장도 문제다. 인형뽑기를 하다보면 처음엔 뽑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마지막엔 집계가 인형을 맥없이 놓쳐버리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인형을 잘 뽑을 수 없게 조작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용자가 쉽게 눈치 챌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용자는 자신의 실수라고 여기며 ‘한 번만 더’ 해보려는 순간 수법에 걸려드는 것이다.

이에 게임위는 11일 ‘크레인게임물 세부 검토기준’을 발표했다. 집게·봉·밀어내기 판 등을 버튼 또는 레버로 조작해 경품을 획득하는 크레인류 게임물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명시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경품을 획득할 수 없는 난이도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게임물 크기, 높이, 넓이, 집게발 및 밀대 등의 크기와 길이, 위치 등 그 제원을 명확히 기재하여야 한다는 등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뽑기방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장은 “경기가 어렵거나 사회가 불안에 빠졌을 때 사행성·요행성 사업이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초창기 피시방이 번창할 때나 바다이야기 등이 생겨날 때도 경기가 좋지 않고 사회가 불안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창업이라는 것은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지속성도 중요한데 현재 뽑기방 사업은 반짝하고 사라질 우려가 있어 지속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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