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향인 철원에 가면 덕고개라 불리는 장수마을이 있다.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공경심도 높고, 쾌적한 환경 탓에 노인들이 평온하게 오래 사는 곳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까 싶다. 말이 장수마을이지, 젊은 사람이 없다 보니 평균 연령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아기 울음소리라도 들려야 평균연령을 확 낮출 텐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치원도 없고 아가 분유라도 살라치면 몇십 리를 가야 하는 곳에서 어느 여자가 애를 낳고 살겠나. 밭고랑이나 매고 소나 치는 것으로는 젊은이들의 야망을 잡아두기 힘듦도 도심으로의 이탈을 부추겼다. 삶의 출발점에 선 이는 대처로 나갔고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은 귀향했으니 역피라미드형 인구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시골에는 대부분 노인만 남았고 명절이나 돼야 마당을 뛰는 어린이를 볼 수 있다. 대학가 주변에 장수마을이 없듯, 지역 특성상 노인들만 남은 것이지, 그곳에 사는 모든 연령층이 고루 천수를 누리는 게 아니다. 외지에서는 부단히 마이크와 카메라를 챙겨 들고 이들을 찾는다. 고령지역이니 장수비법이라도 있는 가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음은 당연하다. 마을 회관 문을 열면 할아버지, 할머니 일색이니 기자의 입에서 감탄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감탄할 일이 아니다. 일찍이 돌아가신 분들은 마을에 없으니 생존하신 분들만 남은 거지. 약한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제거된 최강자 생존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자신이 살던 곳이 장수마을로 알려지는 것은 자손들에게도 긍지가 되며, 나고 자란 고향의 어른들이 장수한다는 것은 본인 건강에 대한 믿음도 된다.

하지만 필자가 단언컨대 특별한 장수비법 따위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구십의 노인이 오얏나무 아래 앉아 코딱지를 파고 있으면 그게 장수 비법이 되는 세상이다. 백 살을 넘긴 촌로가 하루에 산양 젖을 한 잔씩 먹었다면 곧 산양 젖에 대한 성분조사가 이루어진다. 노인의 사진이 상품화된 산양젖에 실릴 때 이미 그 노인은 고인이 되고 모델료는 자식들이 챙겨간다.

외국의 경우는 더 엉망이다. 사람의 발길조차 끊긴 곳, 구름도 쉬어가는 그곳에 장수 노인들이 신선처럼 모여 산다는 신비주의를 표방한 다큐멘터리도 신빙성이 없다. 대표적 장수 지역으로 알려진 히말라야의 서쪽 끝자락 훈자 지역을 예로 들어보자. 파키스탄 땅인 이곳의 생활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가축과 사람이 혼재하는 지저분한 위생 상태, 전염병, 동물의 습격, 높은 유아 사망률과 문맹, 전무한 의료혜택 등 그 어느 것도 장수 요인과 부합된 것이 없다. 비바람과 추위, 그리고 동물의 습격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과 전기 및 상수도 시설 없이 자연에서 버틸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했다면, 그들의 유전적 요인과 생활 방식을 돌아보는 것은 인간 수명을 연장하는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훈자인들을 짐꾼으로 고용한 외지인들은 한결같이 이들의 정력과 인내심, 그리고 유머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참을성 강한 이들의 성격이 기타 장수에 불합리한 모든 요인을 상쇄하고 남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장수인들의 성별 연령비를 살펴보자. 훈자 남성들이 120∼140세까지 살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100세 이상의 남성이 훨씬 많다는 것에서부터 뭔가 삐걱거린다. 전 세계 그 어디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장수한 사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오래 사는 것은 여성 호르몬과 관련이 있으므로 특정 지역에 국한될 일이 아니다. 사냥하거나, 힘든 노동을 하는 등 사회적 요인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남성은 여성보다 단명하게 돼 있는 셈이다. 외딴곳에 존재하는 특정한 한, 두 가지의 요인으로 인간이 천수를 고무줄처럼 늘릴 수 있을까. 장수 지역의 허구와 실상에 대해 다음 호에 좀 더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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