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김병건 기자] 오늘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조선시대가 과연 공맹의 나라였을까요? 안타깝게 조선시대는 법치와 논쟁이 정치 행위의 근간이었습니다. 정치사상은 유교였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논쟁과 권력균형을 목표로 설립된 국가입니다.

과거시험의 마지막 단계로 책문이 있습니다. 임금이 직접 묻고 신하들이 답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공자왈 맹자왈’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광해군의 책문은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이라고 출제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은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법에 의해서 서민들이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을 방안을 찾았습니다.

하나만 더 볼까요. 임진왜란 직후 일본은 극도의 혼란 속이었고, 조선은 일본에 대한 복수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죠. 이때 선조는 다음과 같은 책문을 내립니다. “정벌이냐 화친이냐” 조선왕조 500년을 소위 신민사관에 의해서 당쟁만 했다라고 아니면 2000년이 넘은 공자왈 맹자왈만 했다는 것은 사실 거짓에 가깝습니다.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다”

조선이라는 국가의 행정조직은 2가지 핵심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조좌랑(吏曹佐郞), 다른 하나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입니다. 이조좌랑이야 국가경제를 담당했다면 사헌부지평은 요즘말로 하면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겸임하는 자리입니다.

태종은 큰아들 양녕에게 동생 이도(세종대왕)가 집권하는 동안 한양출입을 금했는데, 양령이 이도의 집권 시절 한양에 들어와 사통(私通)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때 사헌부는 한때 세자였고 임금의 형인 양녕을 탄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사헌부 관은들은 지평부터 대간까지 임금에게 반대했습니다. 

‘군신간의 예의냐’ 아니면 ‘국법의 지엄함이냐’의 논쟁이었습니다. 의금부(사헌부의 라이벌)는 임금의 명을 받아서 사헌부 관원들을 투옥 하고 관직을 삭탈합니다. 그런데 1년 후 가장 반대하던 사헌부지평을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장 정도인 승정원 우부대언(右副代言)에 임명합니다. 그 사헌부지평을 우리는 ‘김종서’라는 이름으로 기억 합니다.

조선시대 사헌부지평의 자리는 권력만큼이나 탄핵과 죽임을 당한 경우도 많습니다. 세종처럼 사대부를 존중한 임금뿐만 아니라 칼로 권력을 잡은 태종에게도 사헌부는 거침없이 간쟁했습니다. 심지어 죽은 대신들의 뼈를 갈아 날려버린 폭군 연산군 앞에서도 사헌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헌부는 권세가의 일을 탄핵했는데도 국왕이 들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관직을 내던지는 것을 자랑처럼 생각하고 선비의 도리이자 군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진실을 위해 노력해야”

해운대 엘시티 이영복 회장이 체포되었습니다. 자수했다고도 합니다. 체포 전날 변호사를 통해서 경찰에 자소서를 보냈으니 말입니다. 몇 달간 도피 중이던 이영복 회장이 갑자기 최순실로 나라가 복잡한 시절에 체포되었을까요?

일부 보수세력은 “야당의 대표적 대권 후보와 엘시티가 관련되었다”라고 말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들을 확인해보면 사실관계조차 부정확하기 까지 합니다. 일련의 주장들은 정황적으로 봐도 합리적 추론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되려 시중에 돌고 있는 전직 고위급 검찰간부 이름이 여러 명 나옵니다.

여의도 소식통에 의하면 특정 장소와 사람들의 이름까지 돌고 있습니다. 여기에 언론인 이름도 몇 명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부산시 고위 공직자 이름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시티의 문제를 청와대가 일부 정치세력과 검찰에 대한 압박으로 보는 시각이 합리적일 겁니다.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사회의 검찰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검찰은 국민들의 감정과 동떨어진 기소가 많았고, 국회에서는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지금 검찰이 정치적 검찰이 될 것인가. 아니면 ‘디케의 눈’을 가린 중립된 검찰이 될 것인가는 오직 수사로서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조직보호를 위한 검찰의 축소 수사는 조선시대 사간원의 역할을 하는 언론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언론도 그래서 엘시티 검찰 수사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지역 부동산 개발 업자의 비리의 문제가 정치적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정치권의 판도가 변해버릴 수도 있는 휘발성 높은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다산 정양용 선생께서는 저서 ‘흠흠신서’를 통해 '흠흠(欽欽)'이란, 삼가고 또 삼간다는 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공정하게 양쪽의 주장을 듣고, 몇 번이고 돌이켜 생각해서 진실에 보다 가까이 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검찰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동안 언론에서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현직의 살아있는 권력이고 그 주변부의 치정(癡情)에 가까운 범죄입니다. 외압도 있을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검사직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생길 수 있습니다. “내 목이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시게”라고 하던 조선시대 사헌부의 기개까지는 아닐지라도 검찰의 신뢰회복이 되는 전환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엘시티 수사의 경우 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를 동기를 아니면 존경하는 선배를 기소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역 정치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만 눈감아 버린다면 조금은 편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엘시티의 엄정한 수사가 검찰 신뢰의 척경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법의 적용이 저 시골 단칸방에서 어렵게 사시는 분이나 최고의 권력을 가진 분과 똑같이 적용될 때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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