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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이모저모] 퀴리부인부터 밥 딜런까지…「116년 전통」 1부터 270
  • 신상언 기자
  • 승인 2016.10.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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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신문=신상언 기자] 미국 포크 음악의 거장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하고 있는 스웨덴 아카데미가 작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문학상을 가수에게 시상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116년 전통의 노벨상은 또 하나의 이색적 기록을 남겼다. 노벨상이 남긴 또 다른 이색적 기록들도 관심을 받고 있다.

1,2,3,17,90…?

노벨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수상한다는 원칙이 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더라도 망자에게는 수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상자로 지정된 후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경우엔 예외다. 스웨덴의 정치가 다그 함마르셸드(1905~1961)는 196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지목됐으나 콩고 내전을 조정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고 최초이자 유일한 사후 수상자로 남았다.

노벨상 역대 수상자는 총 870명이다. 그 중 인생에 한 번 받기도 힘든 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해 2관왕에 오른 사람은 총 4명이다. 어릴 적 읽던 위인전에 자주 등장해 일명 ‘퀴리 부인’으로 잘 알려진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1903년 라듐 및 폴로늄의 방사능을 발견해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8년 뒤인 1911년 순수 라듐을 발견해 화학상을 수상했다. 프레데릭 생어(Frederick Sanger. 1918∼2013)도 1958년과 1980년에 각각 화학상을 수상해 2관왕에 올랐다.

또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바딘(John Bardeen. 1908∼1991)은 1972년에 초전도 이론을 완성해 물리학상을 또다시 받았다.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1901∼1994)은 1954년에 화학상을, 1962년엔 평화상을 수상한 이색 기록을 가지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만 나와도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 이 상을 거부한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 장 폴 사르트르(프랑스)는 1964년 문학상을 거부했고, 레득토(베트남)는 1973년 평화상을 거부했다. 1958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소련)는 정부의 압력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가 1989년 그의 아들이 대리 수령했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는 2014년 17세의 나이로 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유사프자이(1997~)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유사프자이는 10살 때부터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교육운동을 펼쳐오다 2012년 탈레반이 쏜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해 2013년 UN에서 청년대표로 교육권에 대한 연설을 하는 등 운동을 이어나가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고령 수상자는 2007년 90세의 나이로 경제학상을 수상한 故레오니트 후르비치(1917~2008)다.

국가별 순위는?

노벨상 6개 부문 중 문학과 평화상을 제외한 과학부문 국가별 수상자를 살펴보면 미국이 270명으로 독보적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은 물리학상에서 96명, 화학상에서 73명, 생리의학상에서 10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2위 영국이 배출한 수상자가 89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뒤를 이어 독일이 86명으로 3위를, 프랑스가 37명으로 4위, 일본이 22명으로 5위를 차지했다.

특이한 점은 일본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일본은 2년 연속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또 2001년 이후 과학 분야 수상자 현황만 보면 미국(55명)에 이어 두 번째인 16명을 배출해 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일본이 그동안 기초과학과 학문 분야에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라고 말한다. 실제로 일본은 2014년 기준으로 과학 분야 연구개발에 1649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규모다.

노벨상과 한국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노벨상 성적표는 초라하다. 2000년 故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수상 기록이 전무하다. 과학 분야에서는 아예 후보자도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도 노벨상에 근접했던 과학자가 있었다. ‘힉스입자’의 이름을 붙인 물리학계 거장 이휘소 박사다. 그는 시카고대 교수 등을 거치면서 소립자 물리학자로 이름을 떨치며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1977년 미국에서 비운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 후 그와 함께 연구했거나 영향을 받았던 와인버그, 데이비드 폴리처 등이 노벨상을 수상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천기우 한국연구재단 정책연구원은 이에 대해 “한국이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띄는 성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재 정책연구와 토론회 등을 통해 노벨상, 더 나아가 기초과학 학문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상언 기자  unshin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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