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학생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관 이삼봉홀 앞에서 최순실 딸 정 모 학생의 부정입학 및 특혜와 관련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신문=김병건 기자] 맹자의 4단(四端)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4가지의 마음을 말합니다. 최근 뉴스를 접하면서 4단 중 수오지심(羞惡之心)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수오지심이란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일본 정부는 10억엔을 지원해서 위안부 치유 재단을 만든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이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 정부 고위 관리들은 ‘배상금의 성격’이라는 신조어(배상금은 아니지만 배상금의 성격을 띄는)를 남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국 정부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합니다.

물론 일본 쪽 언론에서는 이면 합의사항인 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존해있는 할머니들은 이번 정부의 합의가 무효라며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부끄럽다”라고 개탄합니다. 지금도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 단체는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혹에 눈 감다

K스포츠재단의 돈이 최순실씨(최태민의 딸, 최서연으로 개명) 회사에 흘러갔다는 정황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횡령과 배임죄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덱(최순실씨가 독일에 설립한 서류 회사)이 호텔 구입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최순실씨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은 형사법상의 면책의 특권이 있습니다. 단 2가지의 예외조항이 있지요. 그중 하나가 내란음모죄이고 다른 것은 외환 관리법입니다. 그만큼 외국환 거래법은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는 무서운 법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많은 정의롭고 학식이 높은 검사님들 중 소위 ‘인지’수사를 하겠다는 검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주부터 정치권은 1권의 책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빙하는 움직인다”입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입니다. 이른바 대북 “결재 외교” “북한과 내통”이라는 험한 말이 여당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북한과 내통한 대표적인 사건은 ‘총풍’ 사건(대선 전에 총질을 해서 선거에서 보수층의 결집을 노린)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지난 17일 황당하게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야당이 제기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에 맞불을 놓았습니다.

당시에는 남북 총리급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던 시절입니다. 오랜 기간 직업 외교관으로 유엔에서의 결의문 통과를 위해 노력 했지만 돌연 기권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직업 외교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만을 가질만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남북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결정한 정책입니다.

당시의 결정이 무슨 국가변란 사태라도 되는 듯이 검찰수사와 특별검사 동원까지 주장하는 여당 수뇌부의 섣부른 주장과 험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민생' ‘개혁’이라는 정치적 구호도 아예 치워버린 채 증오와 막말이 뒤덮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가 하는 말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멀게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하고, 가깝게는 최순실, 우병우 사태 물타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후안무치

“정권에 눈치나 보고 특정인을 위해서 학교 운영이 휘둘리니 재학생인 것이 부끄럽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이야기 합니다. “이대”가 아니라 “순실대”, “순대”라고 불리고 있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이화여대 재학 중인 딸이 있는 한 선배는 이번 일로 딸아이에게 미안함과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합니다. 권력자처럼 부정한 방법은 아니라도 최소한 아르바이트 없이 공부에 집중하게 해주고 싶었다. 자신도 수십 년 언론사에 몸담으면서 몇 번의 유혹(?)에도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기자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 나름 자존심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나의 신념이었지만 결국 그 불편함은 우리 가족 모두의 것 아니었겠느냐 하면서 물인지 술인지 구분 없이 마셨다고 합니다.

시인 윤동주는 무엇이 부끄러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롭다 했을까요? 세상의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만한 데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厚顔無恥(후안무치) 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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