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주부에서 일약 성공한 창업가로 각광 받았던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53세) 대표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합병을 위해 손잡았던 미국 기업의 사기행각에 휘말려 거액의 손실을 봤고, 사세는 쪼그라들어 존립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더욱이 한경희 대표를 포함한 오너 일가가 기업 회생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사욕을 챙기는데 급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형국이 됐다.

24일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가 운영하는 시크릿 오브 코리아 등에 따르면 스팀청소기 성공신화로 유명한 한경희생활과학은 미국에 본사를 둔 탄산수제조기 전문기업 SDS(스파클링드링크 시스템)와의 합병 추진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14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었다.

악마의 속삭임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달 29일 미 일리노이북부연방법원에 SDS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 따르면 지난 2014년 4월, SDS의 설립자 ‘부에노’란 남성이 이메일을 통해 한경희 대표에게 접근해 왔다. 그는 탄산수제조기술을 보유중이며 이를 통해 사업 협력은 물론 합병을 통한 IPO(기업공개)로 최대 7500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이에 한경희생활과학측은 SDS의 자산을 인수하고 독점판매계약체결 등의 명목으로 지난해 7월까지 SDS에 총 1200만 달러를 지급했다. 하지만 SDS 측이 제공한 탄산수제조기 샘플은 불량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설상가상 SDS 측은 자신들의 사기행각에 반발하는 한경희생활과학에 계약대로 돈을 더 지불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협박도 일삼았다. 한경희생활과학측은 이같은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몇 차례 돈을 더 지불하는 등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왜?

한경희생활과학이 SDS의 사기행각에 휘말려 현재까지 기록한 손실은 약 140억원이다. 또 소송 비용과 이에 따른 리스크를 감안하면 상당한 출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경영상황을 볼 때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이 이처럼 어이없는 사기행각에 휘말린 것은 경영위기와 맞닿아 있다. 위기를 타개할 궁여지책이었다는 얘기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스팀청소기를 앞세워 한때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LG전자 등 대기업이 관련시장에 진출하면서 사세가 위축됐고, 침구청소기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지공시시스템에 한경희생활과학이 공개한 최근 3년간 재무제표 분석 결과,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었다. 매출액은 2012년 776억원에서 2013년 656억으로 15% 감소했으며 2014년에도 633억원으로 3% 줄었다. 영업이익률은 ▲2012년 3.9% ▲2013년 3.7% ▲2014년 마이너스 11%로 최악의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부채비율도 ▲2012년 250% ▲2013년 240% ▲2014년 392%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부채비율이 100%를 넘기면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것으로 본다.

뿐만 아니다. 기업의 신용능력을 판단하는 지표인 유동비율은 ▲2012년 53% ▲2013년 70% ▲2014년 56%에 머물러 있다. 기업의 유동비율은 보통 200% 이상 유지하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보며 수치가 낮아질수록 지급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심지어 한경희생활과학은 2015년분 감사보고서를 금융당국에 아직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보통 4월에 제출돼야 하지만 6개월이나 늦어지고 있다. 이는 외부감사에서 적절한 판정을 받지 못했거나 자본금 규모가 미달돼 외부감사대상법인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회사가 정상적인 상황에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도덕적 해이?

곳곳에서 위기가 포착되고 있지만 한경희 대표를 포함한 오너 일가는 도덕적 해이로 의심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회사의 경영 악화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에게 돈이 흘러가는 정황이 포착됐다.

2014년 기준 한경희생활과학의 당기순손실은 83억원이며 현금성자산은 1억4400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표이사에 대한 단기대여금은 36억7000만원에 달했다. 주주에 대한 단기대여금도 11억2940만원이었다. 한경희생활과학의 주주는 한씨와 그의 남편, 자녀들뿐이므로 총 48억에 육박하는 돈이 한경희 대표 가족에게 대여된 셈이다.

이밖에도 자녀들에게 지속적으로 지분을 양도해 금수저 논란을 야기했다. 2006년 이후 자녀들이 보유한 주식 지분이 8년 동안 두 배나 상승했다. 흙수저 성공신화의 주역인 한 대표가 그의 자녀들에게 금수저를 물려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 대목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은 논란과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해명을 듣고자 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한경희생활과학의 한 관계자는 “홍보담당자가 몸이 좋지 않아 당분간 출근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면 답변도 회피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얘기를 듣기 위해 첫 통화가 이뤄졌던 관계자에게 다시 수차례에 걸쳐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연결이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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