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삼성’에서 ‘반이건희’로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혀오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X파일 사태로 불거진 불법정치자금 제공 및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과 함께 삼성의 편법 경영승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 등으로 이 회장의 이미지에 크게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단체와 정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X파일 사태 등 삼성의 불법 및 편법 행위가 이 회장 일가의 비윤리적인 경영과 소유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는 비난이 일면서, ‘반삼성’ 분위기가 ‘반이건희’ 기류로 옮겨가고 있다. 본지에서는 삼성 회장으로 등극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건희 회장’을 4회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통해 집중 해부한다.

글 싣는 순서

1) ‘반삼성’에서 ‘반이건희’로
<이건희 회장을 향한 비난화살의 근원지>
2) 이건희 새 저택의 감춰진 이야기
<명당에 집착하는 이건희 회장 일가>
3) 삼성의 무노조경영과 이건희Ⅰ
<삼성 해고자들이 말하는 무노조 경영>
4) 삼성의 무노조경영과 이건희Ⅱ
<극비문건서 나타난 삼성의 무노조 경영>


‘이건희 왕국’의 실체를 파악해 삼성을 개혁하라

제1탄 ‘반삼성’에서 ‘반이건희’로

“삼성그룹의 모든 공적은 이건희 회장에게 돌아가는 반면 이 회장과 그 일가의 치부는 삼성그룹과 계열사들이 떠 앉고 있다.” 삼성 출신의 재계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창조적이고 세계 및 미래지향적인 경영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인정받을지 모르지만 ‘삼성의 비윤리적인 기업문화를 키워온 재벌총수’라는 비난 또한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X파일 사태 등으로 불거진 불법정치자금 제공 및 로비, 편법 경영승계 등 삼성의 비윤리적인 기업문화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면서 ‘삼성’이라는 기업보다 ‘이건희 일가’에 대한 안티 기류가 형성, 이건희 회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반삼성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삼성’이라는 기업이 아닌 이건희 회장 일가의 문제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것. 특히 시민단체와 정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물론 사법처리까지 촉구하고 있다. 지난 87년 11월에 회장으로 선임된 이 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쥔지 18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모 교수가 수강생 200명을 대상으로 ‘닮고 싶은 인물상’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여기서 이건희 회장이 절반이 넘는 106표를 얻어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꼽혔다. 또한 매년 연례행사처럼 실시되는 ‘존경하는 재계 인물’여론조사에서도 이 회장은 단골로 등장한다.

이건희 향한 비난 화살 왜?

이처럼 이 회장은 국내 최고의 재계 총수로 인정받으며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아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삼성SDI의 휴대폰 위치추적 논란을 계기로 삼성의 노동탄압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 회장 일가의 무노조경영에 대한 비난여론이 이어졌고, X파일과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 등으로 ‘반삼성’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이번에는 ‘반이건희’ 기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것.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반삼성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건희 회장과 그 일가에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게 대부분으로 이것은 삼성의 불합리한 지배구조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며 “이 회장이 반삼성 분위기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해 시대흐름에 맞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 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 이면에는 ▲불법정치자금 제공 ▲정·관계 로비 ▲무노조경영 ▲편법 경영승계 등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의 불법 및 편법 행위로 인한 비난여론이 왜 ‘반이건희’ 기류로 번지고 있는 것까.
우선 이 회장은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이재용 상무가 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를 사실상 삼성의 지주회사로 만들어 그동안 변칙증여 등 경영권 세습에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내달 1심 판결이 나오는 ‘에버랜드 변칙 증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회장은 자신의 장남인 이재용 상무가 삼성그룹의 대를 이을 수 있도록 그동안 경영승계 작업을 상당부분 진행해왔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이재용 상무라는 점에서 이미 삼성의 경영승계가 마무리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이 회장은 자신의 일가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생명, 삼성카드 등 비금융 계열사의 보유지분을 편법으로 확대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에 대해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면서 정부의 개혁의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게다가 이 회장의 선친이자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유언으로 알려진 ‘무노조경영’을 고수하면서 삼성 계열사들이 노동탄압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 회장 일가의 시대를 역행하는 경영마인드가 원인이 된 셈이다.
최근에는 X파일 사태로 불법정치자금과 정·관계 로비 의혹들이 불거져 삼성을 궁지에 몰아 넣은 것도 이 회장 일가의 문제와 무관치 않다.
이러한 삼성의 소유지배구조 문제로 ‘반이건희’ 기류가 확대되면서 ‘이건희왕국’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삼성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이건희 신화 ‘지나치게 과장?’

‘반이건희’ 기류가 확산되면서 이건희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이 회장의 창조적·미래지향적 경영스타일로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했다는 ‘이건희 신화’가 사회 전반에 퍼져있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자동차, 영상, 골프웨어 등 사업에서 실패했고, 그동안 삼성그룹이 성장한 이면에는 이 회장이 계열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된 <역사비평> 가을호에서 “삼성에서는 ‘반도체 성장을 주도했다’거나 ‘불량 휴대폰을 대거 소각함으로써 품질 경영을 달성했다’는 등의 이건희 신화를 많이 퍼뜨려 왔지만 이런 신화들은 과장됐거나 해프닝의 성격이 강하다”며 “실제로 이 회장이 독자적으로 벌인 자동차, 영상, 골프웨어 사업처럼 실패한 사업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실제로 이건희 회장이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면서 안하무인이었던 90년대 중반에 삼성은 이재용씨에게 재산을 빼돌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동차 진출 등 무리한 사업이 추진됐다”며 “그 결과 삼성이 위기를 맞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이 회장의 개입 폭이 줄어든 듯 싶고 바로 이 부분이 삼성이 대우, 한보와 다른 점”이라며 “삼성은 그룹 경영에 이 회장이 덜 끼어듦으로써 오히려 발전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송원근 진주산업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삼성의 구조조정으로 5만4,000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몰며 인력감축에만 신경을 쏟으면서도 정작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과잉 중복 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에는 인색했다”며 “삼성에서는 자동차 산업 등 한계가 분명한 사업만 정리됐을 뿐 신세계, 제일제당(현 CJ), 중앙일보 등 계열사 분리는 2세 혹은 3세들의 재산 분리의 의미가 더 강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또 “이 회장은 장남 이재용씨를 그룹의 후계자로 양성하기 위해 ‘경영능력을 가진 이재용’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공격적으로 인터넷 사업에 나서지만 실패했다”며 “결국 이재용씨가 보유한 인터넷 기업의 지분은 초기 투자액을 상회하는 비싼 가격으로 삼성 계열사들이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naver.com


이건희는 어떤 사람?
말 없고 어눌하지만 고집 세고 빈틈없는 성격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비범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으나 활달해 보이지 않았다. 능란하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섬세하고 치밀하고 스스러워하는 그 점 때문에 독특했다. 창조적 감성, 그것을 느끼게 했다.”
작가 박경리씨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두고 한 말이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은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선친인 이병철 창업주가 대구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어 친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인 고 박두을 여사가 이 회장이 태어난 직후 이병철 회장의 뒷바라지를 위해 대구에 나가 있어 이 회장은 4살 때 처음 어머니를 봤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이후 ‘일본을 배워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초등학교 5학년 때 홀로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1,000편이 넘는 영화를 봤을 정도로 외로움을 영화로 달랬다고 한다.
그의 창조적인 감성이 바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집착했던 영화감상이 큰 도움이 됐다는 평도 있다.
이 회장은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를 거쳐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을 수료했다.
이후 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선임됐고, 8년 만인 87년 11월 그룹 회장으로 등극한다.
삼성그룹 총수가 된 이 회장은 ‘신경영’을 강조하며 세계 및 미래지향적인 자신의 경영스타일을 밀어붙인다.
당시 이 회장은 “내가 한 말을 50번 이상 반복해서 테이프를 통해 들어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들으면 실천이 가능해진다”며 삼성 직원들에게 자신의 신경영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또 지난 93년 중앙일보 간부들과의 회의에서 “나보다 일본에 대해서 더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나는 일본의 역사를 알기 위해 45분짜리 비디오테이프 45개를 수십번씩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97년 독일의 경영전문지 ‘매니저’에 특집으로 실린 삼성그룹 분석기사는 이 회장이 기업 경영은 물론 사생활에서도 ‘고집’과 ‘아집’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게 해준다.
이 잡지는 한 독일의 기업인이 이 회장 집의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커 몇 차례 항의했지만 통하지 않아 이 회장 집을 직접 방문해 항의했고, 얼마 안 있어 독일 기업인의 집은 이 회장의 소유로 넘어갔다고 보도하며 ‘한국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말이 없고 무뚝뚝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조목조목 짚어가며 논리를 전개하는 스타일이어서 혈기가 왕성할 때에는 48시간 동안 회의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삼성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말이 없고 어눌해 보일 수 있으나 선친인 이병철 회장을 닮아 엄격하면서도 빈틈없는 성격”이라며 “일을 대충 처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업무를 처리할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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