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국 출국 내막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달 초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X파일과 관련, 검찰이 소환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데다 내달 4일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의 1심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이 회장의 돌연 출국은 ‘도피성’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이달 22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이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될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이번 출국은 순수한 의도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X파일 사태에 대해 총책임을 져야 하는 이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하지 않아 또다시 ‘삼성 봐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X파일 사태 등과 관련, 검찰의 소환조사 검토와 정계 및 시민단체의 잇단 고발로 심적 압박을 받아온 이 회장이 이달 4일 미국으로 출국,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회장의 출국에 대해 삼성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도피성’ 출국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이 회장은 미국 휴스턴의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정밀 검사를 받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와서 출국한 것”이라며 “다른 일정이 있는지 여부와 귀국 시기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굳이 정밀 검사를 받으러 출국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또한 암센터에서 정밀 검사를 받더라도 일반적으로 환자가 2주 정도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회장의 출국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현재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소환 여부와 국감 증인 채택 등으로 국내 상황이 어수선한데다 이 회장에 대해 정계와 시민단체들의 고발이 잇따랐다는 점에서 이번 출국은 단순히 폐암 정밀검사를 위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
이 회장에 대해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 이어지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느낀 이 회장이 미국으로 돌연 도피성 출국을 했다는 해석이다.
X파일 사태가 불거진 직후 참여연대가 이 회장을 고발한데 이어 이달 1일 민주노총과 기아차노조가 이 회장 등을 기아차 인수 비리 의혹으로 고발했다.
민주노총은 이달 1일 안기부 도청테이프 녹취록 내용에 지난 97년 기아차 인수 과정에서 삼성이 대권 후보들과 강경식 전 재경부총리에게 금품을 건넨 의혹으로 이 회장과 강 전 부총리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특히 이 회장의 출국 시점이 X파일과 관련,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이 지난달 소환된 이후 김인주 사장이 검찰에 소환되기 직전이라는 점도 이 회장이 검찰의 소환을 고의적으로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출국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또한 삼성 채권 500억원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전 삼성증권 직원 최모씨의 검거가 이 회장이 출국한 직후 이뤄졌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이와 함께 검찰이 최근 ‘에버랜드 변칙 증여 사건’과 관련, 이례적으로 당시 관계자들에게 실형을 구형한 것도 이 회장에게 상당한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에버랜드 변칙 증여 사건에 대해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을 앞두고 조세부담을 줄이면서 삼성그룹의 전체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실시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행위기 때문에 당시 경영진이었던 피고인들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만큼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관계자였던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에버랜드 상무에게 각각 5년과 3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오는 10월 4일로 예정된 ‘에버랜드 변칙 증여 사건’에 대한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질 경우 검찰의 이 회장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이 회장의 출국에 영향을 미쳤고, 이 때문에 자칫 이 회장의 귀국이 장기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이 회장이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장기 임원을 했을 경우 폐암이 재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현재 ‘건강악화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0년 폐암 진단을 받아 MD앤더슨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기도 했다.

검찰, 이 회장만 출금 제외

이 회장의 출국에 대해 검찰의 ‘삼성 봐주기’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검찰은 X파일 사태가 불거진 지난 7월 21일부터 관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검찰은 출국금지 인원을 꾸준히 늘려 현재 약 30여명의 인원이 출국금지된 상황으로 알려졌지만 이건희 회장은 출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참고인으로 소환했던 이상호 MBC 기자도 출금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정작 X파일의 근원지인 삼성그룹의 총수 이 회장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만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 출금 조치를 취하지 않아 ‘오히려 검찰이 이 회장의 미국 출국을 도왔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X파일 사태가 삼성이라는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과 정·관계 로비라는 불법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회장 일가의 비윤리적인 경영과 소유지배구조에서 기인된 것인데도 검찰이 안기부 녹취록에 나온 인물만을 위주로 소환조사와 출국금지를 내렸다는 것은 이 회장 일가에게 다시 한번 봐주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naver.com


(표) 이건희 회장 출국 시점

▲ 7월 21일 - X파일 첫 보도
▲ 7월 25일 - 참여연대, X파일 관련 이건희 회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 8월 9일 - X파일 관련,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검찰 소환
▲ 8월 29일 - 에버랜드 변칙 증여 사건 관련, 허태학 전 사장 등 실형 구형
▲ 9월 1일 - 민주노총/기아차노조, 이건희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 9월 4일 - 이건희 회장 미국으로 출국
▲ 9월 5일 - 밝혀지지 않은 삼성 채권 500억 관련, 전 삼성증권 직원 최모씨 검거
▲ 9월 6일 - 김인주 삼성그룹 사장 검찰 소환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