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범죄 예방 방법 고민 중”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만기 출소했다. 진주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2001년 4월부터 1년여간 교도소 보안과장에게 전화사용과 흡연 등의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2,000여만원의 금품을 건넨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형을 확정 받은 김씨는 구속 후 당뇨와 저혈압, 협심증 등으로 여러 차례 구속집행정지를 연장하는 바람에 3년만에야 형기를 마칠 수 있었다. 탤런트 권상우씨에게 일본 팬미팅을 강요하고 협박한 혐의에 대해서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하면서 억울한 옥살이는 피할 수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최근 3년여 동안 유명세를 타게 되자 김씨는 지난 11월17일 출소 직후 종적을 감춰버렸다. 새벽 0시 30분께 부산교도소를 나와 미리 준비된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대학병원으로 후송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달랐다. <민주신문>이 김씨의 행방을 쫓았다.


기자들 몰려 경상대병원 입원 포기, 인근 기도원에서 요양 중

순수한 마음 왜곡하는 언론에 상처받아 “인터뷰 피하고 싶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김태촌씨는 서울대학병원이 아닌 경남 진주에 위치한 경상대학병원으로 후송됐다. 복역 중이던 부산교도소와 인근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도 있지만, 김씨는 수술과 진료를 반복하며 지난 2년여 동안 자신의 치료를 도맡아 해오던 경상대병원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19일, 기자가 경상대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김씨가 퇴원을 한 상태였다. 기자들의 끊임없는 방문과 전화문의로 출소 당일인 17일 경상대병원을 다시 나와 기도원으로 들어간 것. 이 일은 기자가 경상대병원을 방문하기 전까지 ‘비밀’로 부쳐졌다.


“지인들과의 만남도 조심”


김씨의 측근으로 불리는 이덕일 목사 역시 김씨의 행방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이 목사는 “김씨가 아직은 지인들과의 만남도 조심스러워 한다. 본인이 먼저 연락을 해올 만큼 심신의 여유가 생긴 뒤 만나는 게 좋겠다”면서 자신도 김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음을 설명했다. 대신 이 목사는 “사정상 출소 당일에 가지 못했던 김씨의 처가 며칠 내로 김씨를 찾아갈 예정”이라는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실제 이 목사는 김씨와 각별한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목사가 국제청소년범죄예방교육원을 설립한 뒤 3년여 전 김씨에게 중앙연수원장으로 위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후 김씨와 함께 선도활동을 해오다 김씨가 구속되자 그의 처 이영숙씨가 선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때문에 김씨가 출소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길 늘 기도해왔다는 이 목사는 “복역 중에 있는 김씨와 출소 이후의 계획에 대해 그동안 편지로 상의해 왔다”면서 “김씨는 일단 요양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광주로 오라 했는데 아직 결정을 못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목사의 말처럼 김씨는 기도원에서 요양중인 것은 사실로 밝혀졌으나 그의 근황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기자들을 피해 입원 치료까지 포기한 만큼 김씨의 인터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셈. 이 목사도 “출소 전이라면 몰라도 출소 후 인터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언론 플레이한다는 얘기를 듣느니 인터뷰를 거절하고 조용히 지내는 편이 김씨가 바라는 바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와의 인터뷰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경상대병원에서 김씨의 부재를 접한 뒤에도 기자가 떠나지 않자 김씨는 1시간 뒤 전화를 걸어 인터뷰에 어렵게 응했다. 행여 오해라도 살까 평소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불필요한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김씨는 서울에서 진주까지 먼길을 달려온 기자를 내칠 만큼 마음이 독하지 못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배려심이 컸다. 특히 아랫사람을 챙기는 그의 잔정은 유명할 정도. 1970년대 당시 주먹계를 주름잡던 김씨는 싸움도 잘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인간성 때문에 많은 후배들이 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월이 많이 흘러 김씨의 건장했던 모습은 병으로 쇠약해졌지만 정 많던 그때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셈. 다음은 김씨와의 전화인터뷰 내용이다.


- 목소리가 좋다.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회복이 다 안돼서 지켜봐야 한다.”


- 지금 있는 곳은.

“기도원이다. 경상대병원에서는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출소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기자들은 물론 지인들이 병원으로 많이 찾아오고, 병원을 통한 전화 문의가 끊이질 않아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기도원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병원은 외래진료를 받는 게 건강상에는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기자들을 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사화해서 곤혹스러웠다. 이번에도 주요 언론에서조차 내가 서울대병원으로 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일부 언론에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기 보단 자신들이 편한 대로 말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적인 목적으로 내게 접근을 하다보니 사건의 본질과 달리 흥미위주로 변질되더라. 순수한 마음이 왜곡돼 보도되는 게 싫다. 물론 건강이 좋지 않은 탓도 있다. 기자들이 병원으로 찾아오고 하다 보니 몸이 쉴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 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그래서 일절 인터뷰를 피하고 있다.”


- 출소 후 장애인 또는 청소년 사역을 할 계획으로 알려졌는데, 향후 계획은 어떤가.

“아동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동성범죄 예방을 위한 방법을 고민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장애인과 불우이웃을 위한 봉사, 청소년범죄 예방을 위한 운동도 진행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선 건강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은 몸이 빨리 낫는 게 우선이다.”


- 교도소에서 최근 이슈가 된 아동성범죄 사건들을 관심 있게 본 모양이다.

“그렇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아동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나 강의 등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 교도소 안에 있는 동안 계획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 사회에 나왔으니 직접 부딪혀볼 생각이다.”


- 항간에 일본으로 간다는 얘기도 있던데, 사실인가.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한때 이민을 생각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정할 수 없다. 이제 막 출소한 만큼 좀더 겪어봐야 하지 않겠나.”


-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들과 가정생활도 시작해야 할텐데.

“나에게도 가족이 있지 않나. 가족에게 돌아가야지.”


- 영화와 자서전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준비는 계속 하고 있지만 아직은 공개할 단계가 아니다. 1년여 전 인터뷰(유명 모 영화감독과 비밀리에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자서전 형식의 가슴에 와 닿는 영화를 만들기로 감독과 얘기가 됐고, 마무리는 역시 신앙인의 모습으로 끝낼 예정이다. 자서전 역시 출판사와 진행 중에 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글을 쓸 수 없어 구두로 설명하면 작가가 대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에서 말한 그대로다. 더 발전된 것은 없다. 사실 그건 오프더레코드였다.”


- 서울에서 언제쯤 만날 수 있는가.

“이곳에서 외래 진료를 마친 후 올라갈 예정이다. 물론 서울대병원에서도 우수한 의료진들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지난 2년여 동안 경상대병원에서 지내온 만큼 나를 가장 잘 아는 병원은 여기다. 치료를 마치면 서울에 올라가긴 올라갈 것이다.”


- 마지막으로 출소한 소감 한마디만 해달라.

“당초 징역 1년형을 받았지만 복역 중 몸이 아파서 구속집행정지로 3년 만에 출소했다. 감회가 새롭다.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과거 나와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선도적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불우이웃과 장애인, 청소년 사역에도 힘쓸 생각이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각오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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