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8월2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공연장에서 융·복합공연 ‘하루(One Day)' 관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공연 총 책임자 차은택 감독이다. 차 감독은 문화계 황태자이자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신문=박정익 기자]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감독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의 중심에 섰다. 차 감독은 2014년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후 문화계 주요 인사로 거듭났다. 특히 지난해 1급 공무원인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발탁되며 황태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늘품체조부터 미르재단까지 그를 둘러싼 의혹이 상당하다. 더욱이 각종 비리에 영향력을 행사한 비선 핵심 실세라는 정황이 하나 둘 드러나 정치권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야권이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감독을 정조준했다. 각종 권력형 비리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 막후 실력자라는 주장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또 논란의 중심에 선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행동대장격인 차 감독을 둘러싼 의혹부터 풀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차 감독을 둘러싼 의혹은 20대 국정감사에서 촉발됐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교육문화체육관광부(교문위) 국감에서 미르재단 관계자의 녹음 내용을 공개해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감독의 영향력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5월 공직을 사임한 차 감독이 2015밀라노엑스포, K스타일허브, 늘품체조, 미르재단 등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문화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더민주는 이를 ‘차은택 게이트’라고 명명하고 의혹을 밝히기 위해 총공세를 펴고 있는 상황이다..

유은혜 더민주 의원은 4일 교문위 국감에서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씨가 관계되는 일마다 정상적으로 추진되던 것이 갑자기 변경되거나, 담당자가 바뀌거나, 예산이 과도하게 증액되는 등 절차가 무시됐다”며 “누구의 지시나 요구, 압박이 있던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의 시작

차은택 감독의 이름이 처음 거론된 것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설립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과의 친분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9월20일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뒷배경으로 주목됐던 차은택 감독과 故 최태민 목사의 딸인 최순실씨가 각별하다”고 폭로했다. 이어 노웅래 의원은 같은달 27일 국감에서 “이사장님, 사무총장님, 각급 팀장까지 (미르재단에) 전부 차은택 단장 추천으로 들어온 건 맞다”는 미르재단 관계자의 녹음 내용을 공개해 불을 지폈다.

문화‧광고계 전문가로 꼽히는 손혜원 더민주 의원은 차 감독의 영향력을 ‘차은택 게이트’라고 규정했다. 손 의원은 “차 감독은 2014년 등장한 뒤 문화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차 감독이)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관련 부서에 넣고, 광고업계의 시장질서까지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 의원은 “(문화계에서) 차은택에게 줄을 서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이번 국감을 준비하면서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너무나 많은 제보를 받고 있다. 끼리끼리 해먹는 세상이라는 한탄이 문화예술계에서 쏟아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좌지우지?

‘2015밀라노엑스포’는 원래 산업통상자원부가 소관부처였지만 행사 5개월을 앞둔 2014년 11월 갑자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관광공사로 교체됐다. 또한 전시감독도 A 감독에서 차 감독으로 교체됐고, 예산은 215억원에서 115억원이 증가한 330억원이 지원됐다.

감독 교체 후 한국관광공사의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차 감독이 총괄한 밀라노엑스포 한국관 전시용역과 관련해 당초 산자부에서 책정한 예산은 62억원이었으나 한국관광공사는 41억원이 증가된 103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전시감독 및 하청업체를 교체할 경우, 법적 배상 책임이 발생한다는 법률 자문 결과에도 불구하고, 소관부처와 감독 교체를 강행해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유은혜 더민주 의원은 4일 “법적 배상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검토 의견까지 나왔는데 그런 것을 다 감수하면서까지 차씨로 감독을 변경하고 돈도 많이 주고 이렇게 진행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라고 추궁했다. 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이에 대해 “결과가 좋았으니 과정도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답해 유 의원으로부터 “그 답변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다”는 핀잔을 들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같은 조치가 이례적이라는 입장이다. 김남국 변호사(법률사무소 명현)는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완곡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했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한번 정해 놓은 업체를 배상 책임까지 무릅쓰고 변경했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윗선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국감에서 주무부처 변경이 지난해 10월31일 장관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같은달 25일 문광부 주최 회의에서 이미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손혜원 더민주 의원은 이에 대해 “들리는 얘기로는 대통령이 김종덕 문광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후 주무부처가 바뀌면서 문광부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면서 “25일 회의 당시 캐주얼 차림으로 등장한 게 차씨”라고 밝혔다.

일사천리?

차은택 감독이 직간접적으로 관연한 일들은 하나 같이 속전속결 일사천리였다. 김병욱 더민주 의원에 따르면 차 감독이 ‘K스타일허브’ 전시관 책임자로 전면에 나선 후 해당 프로젝트 조성 기금 규모가 26억원에서 171억원으로 6.5배 증액됐다.

차은택 감독이 문화창조융합본부장 재직 당시 한국관광공사 서울 사옥 신축 설계비가 26억원에서 용도 변경 등을 통해 125억원으로 증액됐다. 더욱이 기재부가 사업비 증액 요청이 이뤄진지 단 하루 만에 이를 승인해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아울러 밀라노엑스포 당시 용역사업에 참여했던 시공테크가 한국관광공사 사옥 설계 용역까지 맡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차 감독과 시공테크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손혜원 의원은 “임기를 2년이나 앞둔 변추석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돌연 사임한 4월3일에 차 감독이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 부임했다”며 “이후 현재 사장이 취임할 때까지 4개월간 진두지휘하며 옛 한국관광공사 건물을 문화창조벤처단지 및 K스타일허브로 바꿔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변 전 사장의 건물 운용 계획은 문화창조융합본부와 완전히 다른 것 이었다”며 “차 감독의 광고계 선배였던 변 전 사장이 돌연 사퇴하고 차 감독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 것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추론하게 된다”고 변 전 사장 퇴임에 차 감독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막강 영향력?

차은택 감독을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은 늘품체조다. 국민체조로 채택되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 늘품체조는 미스코리아 출신 헬스트레이너 정아름이 만든 것이다. 늘품체조가 2015년 국민체조로 보급되기 전 국민체조 후보에는 코리아체조가 있었다. 정부 지원금 2억원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낙점된 것 아니냐는 분위기였지만 순식간에 국민체조 영예가 늘품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4월 국회 현안보고에서 당시 교문위 소속이던 배재정 전 더민주 의원은 “정(아름)씨와 아이돌그룹 안무가 2명이 차은택씨와 깊은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대통령과 김 장관, 차씨의 인연이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차은택 감독 개입이후 사실상 코리아체조가 탈락했다는 주장도 있다. 안민석 더민주 의원은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코리아체조에 국고 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3년에 걸친 국민체조 개발 작업이 진행됐다”고 설명한 뒤 “반면 늘품체조는 2014년 1월 등장해 같은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연한 후 코리아체조 제작발표회 축소 운영 및 언론보도 자제 지침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증인 출석 불발

차은택 감독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 였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야당 의원들은 4일 교문위 국감에서 차 감독의 증인 출석을 요구했다. 안민석 의원은 “우리 의원실 청년인턴이 하루 종일 차은택이라는 이름을 몇 번 거론됐는지 봤는데 133번이 나왔다”며 “차 감독의 증인 채택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3당 간사가 협의해 차 감독의 증인 채택을 논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13일로 예정된 문광부 종합감사에서 차 감독이 일반증인으로 채택되려면 1주일 전인 5일까지 여야 간사간 합의가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5일 오후 열린 교문위 국감 증인채택을 위한 간사 간 회의에서 차은택 감독의 국감 증인 채택은 새누리당의 거부로 무산됐다.

김병욱 더민주 의원은 “정권 막후 실세로 불리고 있는 차은택씨가 주도한 문화창조벤처단지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의혹투성”이라며 “국가재정법 시행령 위반 소지가 다분하고 관광진흥법 위반이 분명하기 때문에 감사원의 종합감사가 필요하다. 검찰 수사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야당 보좌진은 “미르‧K스포츠재단, 한국관광공사 건으로 차은택과 관련된 자료는 (소관기관에서) 일체 지연 제출을 하거나 제출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의원실 차원에서 계속 자료 독촉을 하고 있다. 의혹을 밝히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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