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한미약품은 최근 2년~3년간 잇따른 글로벌 제약기업과의 기술수출계약으로, 주식시장에서 이른바 잭팟을 터트렸다. 국내 제약 산업의 한단계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가 속에 경쟁기업마저 한미약품 배우기에 나섰다.

새로운 제약 대장주로 급부상하며 투자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한미약품은 최근 신약 임상시험 중 2명이 사망한 사실을 뒤늦게 밝혀 논란을 야기했다. 더욱이 논란이 가중되면서 잭팟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 하나 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한미약품의 도덕적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대목이다.

10일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한미약품이 출시한 올리타정의 임상시험 도중 첫 사망 사례는 지난 2015년 7월에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인 2015년 7월28일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과 8000억원 규모의 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한미약품은 계약 후에도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사례를 숨겼다. 불편한 진실은 14개월이 지난 후에야 식약청에 보고됐다. 베링거인겔하임이 최근 계약을 취소한 사례를 볼 때 부작용 사망사고를 미리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늑장공시도 논란이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미국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같은 호재에 투자자들이 몰렸지만 다음날 악재가 터졌다. 한미약품은 30일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기술수출계약이 취소됐다고 공시했다. 계약 취소는 전일인 29일에 이뤄졌지만 하루 늦게 이를 투자자들에게 알린 것이다. 이틀 간 주가 등록폭은 18%에 달했다. 개미투자자가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

더욱이 30일 공매도 주문 매수인 10만주의 절반인 5만471주가 한미약품이 악재를 공시하기 직전 30분간 거래됐다. 짧은 시간 안에 대량의 물량이 갑자기 거래됐다는 점에서 한미약품의 내부정보가 소수의 투자자들에게만 흘러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안일한 대처

이 뿐만이 아니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28일 ‘베링거인겔하임과 7억3000만달러 기술수출 계약’ 사실을 공시했다가 다음날인 29일 ‘2분기 영업익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1% 감소’를 공시했다. 당시 주가 등락폭은 30%에 달했다.

한미약품의 한 개인 투자자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지난해 일어난 공시 패턴과 너무 유사하다”며 “한미약품이 의도적으로 시차를 두고 공시를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재식 한미약품 부사장은 2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늑장 공시에 대해 “공시를 위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지연됐을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현재 금융위원회가 범죄 혐의를 조사 중에 있으며 검찰에 사건을 신속하게 넘기는 패스트트랙 절차까지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개인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성토하고 있다. 직접 행동에 나선 사람도 있다. 지난 5일 김모(70/남)씨가 한미약품 본사 로비에 휘발유와 라이터를 품고 들어가던 중 경찰에 제지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한미약품에 주식을 투자했다가 1100만원을 손해 봤다며 난동을 부렸다. 현재 김씨는 주식으로 손해를 본 부분에 대해 사측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투자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있지만 한미약품은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하는 안일한 대처만 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4일 홈페이지에 ‘존경하는 주주 여러분’이란 제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골자는 한미약품의 성장잠재력을 믿고 주가가 오를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 한미약품은 “위기를 성장통으로 여기고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피해 주주들에 대한 사과문을 끝맺었다.

상도덕 무시

한미약품은 시장질서와 상도덕을 무시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2012년 4월 유통 자회사 ‘온라인팜’을 설립해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유통협회의 반발에 직면했다. 제조업체가 유통까지 장악하는 것은 위법은 아니지만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것. 결국 한미약품이 자사제품 외 타사 제품은 유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자회사 설립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한미약품은 자회사를 통해 엄청난 매출을 거둬들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한미약품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총 매출은 약 1950억원, 자회사 온라인팜의 매출은 1250억에 달했다.

공정거래법상 자산 5조 이상 기업이 자회사를 통해 200억원 이상 혹은 매출의 12% 이상을 창출하면 일감몰아주기로 간주,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한미약품의 지난해 자산은 1.7조원으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자산 5조원 미만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부당지원행위’에 관한 위법성 여부를 심사받게 돼 있지만 이마저도 관리감독이 쉽지 않다. 모회사가 비계열사와 자회사간 부당·차별 지원을 했는지, 그로 인해 시장 경쟁질서가 저해됐는지를 심사해 과징금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인데 판단 기준이 애매하고 심사가 까다로워 실효성이 미미하다.

금수저 논란

한미약품의 도덕적해이는 세대를 걸쳐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재벌닷컴에서 발표한 ‘어린이주식부자 순위’에서 한미약품 3세들이 1~7위를 휩쓸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손주 7명이 각각 250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100억원이 넘는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어린이 주식 부자가 8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충격을 줬지만 그 중 7명이 한미약품 3세였다는 사실에 금수저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고 지배구조와 회장의 업무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손주들 배당도 주식 가격이 많이 오르다보니 금액이 커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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