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번지점프와 짚와이어 등 하강레포츠 관련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강촌에 소재한 한 번지점프대에서 20대 여성이 줄이 풀린 줄도 모른 채 뛰어 내리다 40m 아래로 추락했다. 또 군산 선유도에서 스카이라인을 타던 30대 여성은 뒤따라 내려오던 이용객과 충돌해 허벅지뼈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법 개정과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안전매뉴얼이 존재하긴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인재’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 또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는 점도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 법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엄격한 법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 등 선진국은 허가제 시행과 세부적인 매뉴얼을 엄수해 사고 방지에 나서고 있다.

사고 사례

춘천시 강촌의 한 번지점프대에서 9월14일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번지점프를 하러 이곳을 찾은 유모(29/여)씨가 안전줄이 풀린 줄도 모른 채 뛰어내리다 40m 아래로 추락한 것. 다행히 유씨는 호수로 추락해 죽음은 면할 수 있었지만 전신에 타박상을 입었고,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유씨는 “안전줄이 연결돼 있지 않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추락한 뒤 숨이 막히면서 너무 아팠다”며 “쇳덩어리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사고 후 유씨의 동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하강스포츠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도 커져가고 있다.

번지점프뿐만 아니라 바다를 가로질러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짚와이어 사고도 빈번하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양편의 지주대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하고 도르래를 걸어 그네처럼 타고 내려오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짚라인’, ‘스카이라인’ 등이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스카이라인을 타던 피서객 이모(33/여)씨가 뒤따르던 다른 이용객과 추돌하면서 허벅지뼈 골절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에 더욱 안전조치에 신경 써야 했으나 무리하게 운행하다 추돌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경남 하동군 구재봉 자연휴양림에서도 지난달 8일 하강레포츠시설을 타던 관광객 A(48)씨가 제동장치 고장으로 의심되는 사고로 중간 기착지를 들이받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규정 왜 있나

짚와이어는 2009년 국내에 소개되면서 대중적인 레저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내에는 하강레포츠에 대한 법적 안전 규정이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운영업체들은 미국챌린지코스기술협회(A.C.C.T)의 매뉴얼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율에 맡겨져 안전규정에 대한 행정 당국 등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충남 보은에서 짚와이어를 타던 12세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 역시 경찰조사결과, 민간업체가 위탁 운영을 맡았으며 안전관리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운영요원 역시 전문 업체에서 위탁 교육을 받지 않고 업무에 투입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강촌 번지점프 사고도 안전매뉴얼과 관련 지침이 존재하긴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업계관계자는 “주말이다 보니 찾는 사람이 많아 빨리 빨리 뛰어내리게 하고 숙달되지 않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다보니 안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번지점프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려면 번지점프 회사 근무 경력이 200시간 이상, 번지점프 경력 250회 이상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허술한 법 규정과 극명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번지점프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번지점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대부분은 인재”라며 “동호인들 사이에선 예전부터 법적 관리 감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므로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제도 정비

현재 레포츠 업종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다. 사업자등록만하면 누구든 번지점프 영업이 가능하다. 신고 후 운영되는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은 허가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리감독이 허술해 사고유발의 위험이 높다.

더욱이 사고가 발생한 업체에 대한 허가 취소 등의 제재도 불가능하다. 이에 법전문가들은 업무상과실치사 등으로 처벌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처벌 수위는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에 머무는 것.

반면 미국, 호주, 유럽 등은 엄격한 허가제로 운영된다. 최대 하중, 번지 줄 사용 횟수 등을 명시해야 번지점프 영업을 허가해준다. 기준이 엄격한 만큼 운영과 안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구조다.

정문현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번지점프 같은 경우 선진국은 300번 정도 뛰면 교체하라는 등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규정이 없다”고 엄격한 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또 번지점프시 작성하는 서약서에 대한 개정의 목소리도 높다. 현재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며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다. 서약서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번지점프를 할 수 없다. 위험한 만큼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게 아니라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이에 법전문가들은 번지점프업에 대한 법제 정비와 함께 보험가입 의무화 등 적극적 입법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 교수는 “서약서의 내용을 보면, 싫으면 뛰지 말라는 식”이라며 “정부기관에서 이런 것들에 대한 법을 좀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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