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달력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지나치는 별난 기념일이 많다. 

‘구구데이’, ‘물의 날’, ‘저축의 날’, ‘기린의 날’ 등 이름만 들어서는 왜 제정됐는지 어떤 의의가 있는지 생소하지만 제정 이유와 역사 등을 살펴보면 유익한 날도 많다.

가령 매년 9월9일은 장기기증의 날이다.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2008년부터 매년 9월9일을 장기기증의 날로 정해 각 기관과 단체, 학교, 기업 등에서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뇌사자의 장기기증 시 쓰일 수 있는 장기가 총 9개이기 때문에 9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제정됐다. 서울시도 2014년 3월 ‘장기 등 기증등록 장려에 관한 조례’를 개정, 9월9일을 장기기증의 날로 제정해 장기기증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10월에도 경찰의 날(10월21일), 독도의 날(10월25일) 등 10개가 넘는 국가기념일이 있다. 특히 2일은 ‘노인의 날’이다.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시키고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정부가 1997년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일반인에게 조금 생소하지만 대전·충주 등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지난달 22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노인의 날을 맞아 어르신 277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지기도 했다.

이밖에 비공식적이지만 꽤 널리 알려진 기념일도 있다. 9월9일은 장기기증의 날이자 구구데이다. 농림부에서 닭울음 소리와 유사한 ‘구구’에서 착안, 닭고기 소비 증진을 위해 만든 기념일이다. 또 밸런타인데이(2월14일)를 비롯해 매월 14일은 기상천외한 기념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같은 비공식적인 기념일을 둘러싼 부작용도 상당하다. 마케팅 상술이라는 지적, 같은 날이지만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도 퇴색되는 경우다. 2월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임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밸런타인데이로만 알고 있다.

의미 깊은 국가기념일

국가기념일이란 1973년 3월에 시행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4142호)에 따라 정부가 제정·주관하는 기념일을 말한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주관부처가 정해지고 이후 부처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기념식과 부수 행사를 할 수 있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국가기념일은 현충일과 식목일, 6ㆍ25사변일, 한글날 등 45개이며 이외에 '발명의 날', '방재의 날', '사회복지의 날', '소방의 날'은 개별 법령에서 따로 정하고 있는 것도 있다.

특히 학생독립운동 기념일(11월3일)은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1929년 일제에 항거한 광주학생운동이 발생한 11월3일을 기리기 위해 1929년 제정됐다. 이후 1972년 10월 유신 당시 폐지됐다가 1984년 다시 부활됐다. 2006년 2월9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0월25일 독도의 날도 중요 기념일 중 하나다.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25일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2010년 제정됐다. 꾸준히 불거지는 한·일 간 독도영유권 분쟁 때문에 독도의 날을 기리고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것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별난 비공식 기념일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뿐만 아니라 이름도 생소한 기념일도 많다. 매년 6월21일은 ‘세계 기린의 날’이다. 2014년 국제 기린 보호단체 'GCF(Girraffe Conservation Foundation)'에서 지구 상의 기린과 그 서식지를 보전하자는 취지로 제정했다. 야생 기린은 이미 아프리카의 7개국에서 멸종됐고 개체수도 약 8만마리로 줄어들었다. 때문에 기린 보존에 힘쓰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날이다.

또 2월14일 밸런타인데이, 3월14일 화이트데이가 유행하면서 이를 본떠 다이어리데이(1월14일), 블랙데이(4월14일), 로즈데이(5월14일), 키스데이(6월14일), 실버데이(7월14일), 그린데이(8월14일), 포토데이(9월14일), 와인데이(10월14일), 무비데이(11월14일), 머니데이(12월14일) 등이 생겨났다.

이외에도 1자가 네 번 겹친 11월11일을 빼빼로데이, 2자가 세 번 겹치는 2월22일을 커플데이, 3월3일은 삼겹살데이로 불린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각 업체가 이 때를 맞춰 다양하고 이색적인 이벤트와 기획 상품을 내놓는데 평소의 2~3배 되는 가격에 판매돼 과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2월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밸런타인데이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2.7%가 "기업 상술의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답했다.

또 비공식적인 기념일에 가려져 진짜 기념해야 할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있다. 1910년 2월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2월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만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숭고한 뜻을 기리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야 할 날임에도 커플간 선물을 주고받으며 온 국민이 들떠있는 모습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윤원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동양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안 의사의 뜻이 좀 더 알려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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