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진도 5.8 지진의 진원지인 경주시 내남면에서 거주하는 최충봉씨가 18일 오후 자신의 집에 생긴 벽 균열을 취재진을 향해 가리키고 있다.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대한민국이 지진 공포에 휩싸였다.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심각하다. 규모 5.8의 지진을 경험한 경주와 포항 시민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무능에 가깝다. 제대로 된 위기대응 매뉴얼이 가동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지난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400차례가 넘는 여진이 계속돼 주택균열과 기물파손 등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일주일새 4.5 규모의 강력한 여진이 발생하면서 새로운 전진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인명피해가 발생하진 않았다. 그러나 지진이 시작된 경주뿐만 아니라 대전, 서울 등 전국적으로 지진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피해 신고건수가 벌써 1만4000여건을 넘어섰다.

지진의 공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지는 직접적인 피해를 넘어 SNS 중단사태라든지 열차 지연, 관광객 감소, 원전 위험 등 예기치 못한 피해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진으로 인해 대한민국 시스템 전체가 위기에 빠진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며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앞으로 한반도에서 지진이 발생할 위험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1978년 6차례였던 규모 2.0 이상의 지진 횟수는 지난해 44차례로 증가했다. 올 상반기에만 이미 39차례의 지진이 발생했다.

6.8%의 경고

그러나 대한민국의 지진 대비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전체 건축물 가운데 내진설계가 돼 있는 건축물의 비율이 6.8%에 지나지 않는다. 

또 재난 발생 시 긴급문자 발송이 지연되는 등 정부의 늑장대응도 문제다. 지난 12일 경주지진 당시 재난 문자가 9분이나 늦게 발송되면서 국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에 국민안전처는 6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지질조사 및 내진 설계를 보강할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란 비난과 지속적인 추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한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소방방재청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해 국내 활성단층 등 지질조사를 추진하다 예산문제로 중단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 내진설계 주택에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인센티브가 설계비용보다 현저히 적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그동안 지진 대책에 무관심했던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의 지진 대책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김용국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반 특성에 따른 내진 기준을 보강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지반 상태를 고려한 한국형 건축 설계·내진 설계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혼비백산

12일 오후 8시32분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 지역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1978년 기상청이 계기지진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 규모였다. 전례 없던 규모의 강진과 전국적으로 감지된 지진 여파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강모(54/여)씨는 “TV를 시청하던 중 몸이 흔들리고 TV화면도 흔들리는 것을 보고 무서워 외출한 아들에게 전화로 빠른 귀가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는 윤모(36/남)씨도 “지진은 처음 느껴봤다”며 “커튼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순간 겁에 질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2일 본진이 발생한 이래 19일에도 경주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고 20일에도 규모 2.4의 여진이 발생했다. 추석연휴가 있던 지난 한 주 동안 총 400여건의 여진이 발생했다. 규모 1.5~3.0의 여진이 385회로 가장 많았고 규모 3.0~4.0의 여진이 14회, 규모 4.0~5.0의 여진이 2회 발생했다.

지진 왜?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978년 지진관측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까지 총 1212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당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6회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상반기에만 총 39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또 올해 발생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3회로 나타났다. 지진의 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지진이 잦아진 원인에 대해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언급한다. 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을 말한다. 이 지진으로 해일이 일어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중단됨에 따라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되는 등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우리나라의 지진이 잦아졌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큰 경우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일본 지진 때 한반도가 동쪽에서 5㎝, 서쪽으로 2㎝ 끌려갔다”며 “동일본 지진은 우리나라 지진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김재관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통상적으로 지진 에너지가 축적 되면 지진이 발생하는데 일본 대지진이 지진 에너지를 축적시킨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후폭풍

지진의 여파는 단순한 흔들림과 공포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진 발생 후 전혀 예상치 못하게 SNS와 일부 인터넷 사이트가 중단됐으며 전화와 문자 메시지 서비스도 잠시 중단됐다. 오프라인상 재해가 온라인 영역까지 피해를 미친 것이다. 

온라인의 영역은 이제 현실 세계와 동떨어질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 된 만큼 지진으로 인한 온라인의 피해는 제2의 재앙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카카오톡은 2시간 넘게 먹통이었으며 모바일 네이버에서도 검색 오류가 발생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진 당시 트래픽 양이 급증해 연간 최대치의 두 배를 넘어섰었다”며 “점진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닌 한번에 트래픽이 몰려 장애가 발생했으며 대응하는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또 통신 기지국과 데이터센터 등이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만큼 이런 시설물도 지진에 대비해 안전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자칫 온라인과 오프라인 시스템 모두가 붕괴될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는 물류•교통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코레일에 따르면 12일 지진이 발생한 이후 철도 안전관리 시행규칙 상 지진대응 매뉴얼에 따라 38개 열차에 정차 지령을 내렸다. 또 황색, 적색 경보 구간에서 서행 운전함에 따라 열차가 최대 2시간까지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KTX의 경우 지진 발생시 규모에 따라 시속 30㎞에서 90㎞ 이하의 속도로 달리게 된다.

이후 추석 연휴에도 지연 운행이 이어져 명절대이동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에 코레일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순회점검 결과 선로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나 계속 이상 유무를 조사할 계획”이라며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심야시간대에 다시 한번 정밀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전 피해

이번 지진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여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지진에 의한 해일로 발생한 만큼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이 원전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실제로 경북 동해안과 부산 기장 일대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원전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현재 경북 동해안에는 경주 월성원전 6기, 울진 한울원전 6기 등이 있다. 

현재 운영 중인 6개의 원전(고리 1~4, 신고리 1·2호기)에 시운전 중인 신고리 3·4호기와 정부가 건설을 승인한 신고리 5·6까지 합하면 10기나 된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원전이 지진 규모 6.5~7.0까지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최대 5.8 규모의 이번 지진에 별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 원전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 가압경수로(PWR) 방식이다. 일본 원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비등경수로(BWR)방식보다 기술적으로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일본 원전은 원자로 내의 냉각수를 직접 끓여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운전하지만 우리는 이를 분리했기 때문에 외부로 방사성 물질 누출 가능성이 적다"며 “약 노심이 녹아 수소가 발생하더라도 우리 원전은 일본 비등경수로 방식과 달리 전기 없이 동작하는 수소재결합기가 있어 수소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 및 시민사회에서는 원전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원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다’란 정부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며 원전 정책 재검토와 국회 원전안전특위 설치를 제안했다.

우왕좌왕

정부는 이번 지진 사태에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비난을 샀다. 

국민안전처는 지자체와 연계해 대책을 강구하고 긴급재난문자 발송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첫 지진 발생 후 약 15분이 지나서야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또 지진의 영향이 전국적으로 감지된 데 반해 발송 지역은 영남지역에 한정돼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 밖에 지진 이후 국민안전처 홈페이지 접속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또다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건축물 내진 설계에 대한 대책도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전국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의 내진성능 확보율은 33.0%에 그쳤다. 

전체 건축물 가운데는 6.8%만 내진설계가 됐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경남도의 ‘도내 건축물 용도별 내진 설계 현황’에 따르면 도내 전체 건축물의 5.6%만 내진설계가 돼 있다.

이에 정부는 내진설계 건축물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013년 8월부터 지방세특례제한법에 따라 내진설계 의무대상(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이 아닌 민간 건축물이 내진성능을 확보할 경우 취득세와 재산세를 10%씩 감면해주고 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건축물 내진성능 확보로 지방세 감면혜택을 받은 건수는 단 4건에 그쳐 있으나 마나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세제지원만으로는 민간 건축물의 내진보강을 활성화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세금감면에 비해 내진성능 확보를 위한 공사비용 부담이 커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2층 이하 건축물의 경우 내진성능 확보 시 건축비가 약 3~5% 증가한다”며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에 세금감면만으로는 내진보강을 유인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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