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복현명 기자] 금융당국이 ‘국민 절세’ 등 만능통장이라고 요란스럽게 홍보했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 6개월 만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은 ISA 도입 전 실시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관련 상품이 국민 모두에게 절세 혜택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6일 금융소비자원으로부터 입수한 기획재정부의 ‘ISA 계좌 관련 조세특례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소관부처인 기재부는 ISA 제도 시행 5년간 1조65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6년 1100억원 ▲2017년 2200억원 ▲2018년 3300억원 ▲2019년 4400억원 ▲2020년 5500억원 순이다. 즉, 연평균 3300억원의 세수 감소분을 통해 전체 가입자(국민)가 세제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ISA 계좌 관련 조세특례 예비 타당성' 조사 보고서 중 정책성 제언 부분 일부 발췌. 자료=금융소비지원 제공.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ISA는 저축 여력이 없는 서민과 중산층에게는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저축 효과 없이 자산 이동만 초래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기재부가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성급히 도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세제과 관계자 역시 “ISA의 연간 납입한도가 2000만원으로 설정돼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층만이 세제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비과세 한도 등 제도적 보완을 서두르고 있다”고 사실상 오류를 인정했다.

한편 금융소비자단체 등은 금융당국의 졸속 행정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또 ISA 폐지와 새로운 세제 혜택 제도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ISA의 세제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알면서도 졸속 시행한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와 시장을 기만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ISA를 즉각 폐지하거나 새로운 세제 혜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완전판매 횡행

ISA는 한 계좌에 예금, 적금을 포함한 주식형·채권형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등 여러 상품을 종합 관리하면서 계좌별로 200만~250만원의 수익까지 비과세 되는 금융상품이다. 

연간 2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까지 납입 가능하지만 1인 1계좌만 허용돼 한번 가입하면 3년~5년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가입자가 직접 상품 구성을 할 수 있는 ‘신탁형’과 금융사의 포트폴리오(MP)를 제시받고 투자권을 위임 받는 ‘일임형’으로 구분된다.

신탁형은 모든 금융사가 출시했고 일임형의 경우 투자일임업자로 등록돼 있는 증권사 위주로 출시됐다. ISA 가입이 가능한 금융회사는 ▲증권사 21곳 ▲은행 14곳 ▲보험사 2곳 등 총 37곳에 달한다.

ISA는 재산 증식과 세제혜택 등 긍정효과가 부각되며 ‘만능통장’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출시이후 금융사들은 실적 경쟁에 급급해 불완전판매가 횡행했다. 

본지의 단독 보도(6월 27일자 보도, ISA가 뭐길래…은행권, 실적압박 불법 횡행)를 통해서도 ISA 출시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시중 은행 일선 지점에서 고객이 직접 작성해야 하는 가입 서류를 창구 직원이 대필하거나 업무 마감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고객 유치를 위한 ISA 계좌 개설 업무를 한 점이 확인된 바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ISA 암행 점검(미스터리쇼핑)’ 자료를 보면 ▲은행 84% ▲증권사 28%가 불완전판매 방식으로 ISA를 판매해왔다. 은행의 경우 전체 13개사 중 11개사가 ‘미흡’ 이하였고 2개사는 ‘보통’ 수준이었다.

가입금액↑, 가입자수↓

2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ISA 총가입계좌 수는 240만좌, 잔액은 2조8426억원으로 ▲은행권 217만3000좌(90.4%, 2조988억원) ▲증권사 22만8000좌(9.5%, 741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첫 출시 후 1주일 동안 ▲은행 61만7000계좌 ▲증권사 4만1000계좌 등 총 65만8040계좌(3204억원)의 3.69배나 늘어난 셈이다.

신규계좌 및 누적계좌별 평균잔고 변화추이 표. 자료=금융위원회 제공.

그러나 가입자 수를 보면 ▲3월 120만4000명 ▲4월 57만1000명 ▲5월 36만3000명 ▲6월 22만9000명 ▲7월 1만7000명 ▲8월 1만5000명 등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는 불완전판매와 수익률 공시 오류 논란 등으로 금융소비자들의 관심이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ISA 가입금액은 증가 추세다. ISA계좌의 평균가입금액은 가입 초기 49만원 수준(3월 18일 기준)이었으나 신규가입 금액증가와 추가납입 등으로 9일 118만원으로 늘어났다.

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29일 일임형 ISA 공시수익률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150개 모델포트폴리오 중 7개 금융사의 47개 모델포트폴리오에 공시된 수익률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권에서는 기업은행이 모델포트폴리오 운용방법을 변경할 경우, 모든 일임형 가입 고객에게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규 고객에게만 적용해 2686명의 고객이 약 300만원의 손실을 입혔다. 증권사 중에서는 삼성·미래에셋대우·대신·현대증권 등은 수익률 공시를 높거나 낮게 공시했다.

김기한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장은 “수익률 계산 오류는 기준가 등 수익률 산정 방식을 협회 기준과 다르게 적용한 것이 원인”이라며 “아직 관련 업무가 익숙하지 않다고 본다. 의도성은 없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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