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생후 150여일 된 아기를 키우는 초보엄마 신모(34/여)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옷과 유모차, 분유 등 구매해야 할 유아용품들이 산더미 같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픈 게 부모 마음이라지만 빠듯한 가게 살림을 생각하면 허리가 휠 지경이다.

한때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100만원을 호가하는 패딩점퍼가 부모들의 등골브레이커로 불렸던 것처럼 이젠 유아용품이 초보 엄마아빠의 ‘신종 등골브레이커’로 거듭나고 있다. 아이를 위해 해외 명품을 고집하는 부모들과 이런 심리를 이용한 명품 마케팅까지. 유아용품을 둘러싼 문제가 심각하다.

유모차에 금가루라도?

유모차는 초보 부모들의 대표적인 등골브레이커다. 한 때 '고소영 유모차'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실제로 고소영이 구매했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육아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던 것. 

이 브랜드는 미국의 오르빗(Orbit)으로 100만~150만원에 팔리고 있다. 이후 수입 명품 유모차의 인기가 급증했다. 이태리 명품 잉글레시나의 제품은 40만~350만원까지 다양하다. 영국 황실에서 사용한다는 맥클라렌도 30만~140만원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가 크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유모차에 누가 100만원 이상을 지불하겠느냐고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아용품 수입액은 2010년 3300만 달러에서 2012년 2억6488만 달러로 급증했다.

유모차뿐만 아니다. 

아기들의 주식인 분윳값도 1통(800g)에 3만~5만원을 넘나든다. 유기농이 더해지면 가격은 더 치솟는다. 

아기들이 이 한 통을 보통 1주일 만에 다 먹는다고 하니 부담은 더 크게 다가온다. 유아용 카시트의 경우에도 국산은 30만~40만원대, 수입은 70만~80만원을 웃돈다. 또 유모차 컵 홀더 하나에 3만원, 유모차 모기장 3만원 등 값비싼 유모차부터 시시콜콜한 용품까지 가격 거품이 상상을 초월한다. 유아용품 업계가 추산하는 국내 유아용품 시장 규모는 최소 1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서 언급했던 신모(34/여)씨는 “남들은 다 해외 유명브랜드를 타고 다니는데 내 아이만 저렴한 걸 타면 미안해지는 것 같다”면서 “식료품비 등의 지출을 아껴서라도, 사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유아용품 구입에 허리가 휜다”고 토로했다.

비싼 게 좋을까?

해외 명품 유모차는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하는 걸까.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11월 영국·홍콩·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소비자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한 11개 유모차에 대한 품질 테스트를 진행했다. 검사는 국제소비자테스트기구(ICRT)를 통해 이뤄졌다. 안전성·내구성뿐만 아니라 기동성·운행편리성·등받이조절 등 전반적인 사용 품질을 평가했다.

그 결과 11개 제품 중 비교적 저렴한 맥클라렌 '테크노 XLR'(76만5000원)과 잉글레시나 '트립'(36만8000원)이 총 10등급 중 2등급을 받았다. 

반면 스토케 '엑스플로리'(169만원)와 오르빗 'G2'(145만원)는 '미흡'에 해당하는 4등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가격과 성능 간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국산 유모차도 명품 마케팅에 합류한 상태다. 부모 심리가 국산 제품의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것. 소비자 평가 1위 등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리안과 페도라 역시 25만~100만원 대다.

악순환의 연속

유아용품이 등골브레이커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부모들의 자식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어 하는 심리와 그것을 이용하는 마케팅 상술이 그것이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유아용품 앞에 ‘강남’을 붙여 쓰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강남 유모차, 강남 분유, 강남 젖병 등 강남 엄마들이 쓰는 제품이라고 입소문이 난 고가의 제품들이 유행한다는 것.

그런데 이는 유아용품 회사가 치밀하게 계획해 SNS, 카페, 블로그 등으로 확산시키는 바이럴 마케팅의 산물이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육아 산업은 프리미엄 마케팅이 통하는 얼마 안 되는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가격이 비싸다고 반드시 품질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면서 “내 아이를 최고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의 심리를 이용한 기업의 행위가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들의 심리 또한 문제다. 

소비자교육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수입 유아용품 구입 이유 중 31.1%가 브랜드 인지도라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부모들은 내 아이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며 “명품 구매에 대한 거부 반응 크지 않아 프리미엄 용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저출산에 영향을 줘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합계출산율이 2000년 1.47명에서 2014년 1.19명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소자녀 추세가 지금의 유아용품 거품현상과 맞물려 있는데, 앞으로 부모가 될 예비부부들은 자식 키우는 비용이 버거워서 애 낳기를 두려워한다.

최윤경 육아정책연구소 팀장은 “고가의 신제품 출시가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며 “육아용품 비용 부담으로 인한 저출산 기조가 강화되지 않도록 착한 가격과 착한 기업의 비용 구조가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