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희주/ 문학동네/ 1만원

[민주신문=김미화 기자] 요즘 중년 이상의 독자들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또래의 경험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거리감 때문이다. 걸러지지 않은 거친 말과 가벼움을 거북스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소설에 ‘세대차’가 있을 수 없지만 그 세대만이 공유하고 있는 절실한 그 무엇을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은 있게 마련이어서 소설은 세대 공감의 장이 되기도 한다. 올해 대학소설상 수상작인 이희주 장편소설 ‘환상통’은 일명 ‘빠순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0, 20대 여성의 아이돌 팬문화를 당사자의 목소리에 담아 문학적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동안 문학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아이돌 팬덤 문화를 본격 탐구하고 그 문화를 공유하는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소설이다.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출간과 동시에 뜨거운 관심
20대 사생팬 일상 그대로 그려, 경험·정서 공유 세대공감의 장

‘빠순이’라는 말만큼 노골적인 경멸과 무시가 배어 있는 단어도 드물다. 한 대상에 대한 그들의 들끓는 열망과 동경은 ‘할 일 없는 애’들의 ‘정신 나간 짓’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런 고정된 시선은 그들의 내면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 차단해 왔다. 여기 ‘빠순이’라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마련됐다.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20대 여성 화자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 ‘환상통’이다.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인 ‘환상통’은 대학생 작가 이희주의 등단작이다. 대학 휴학 중 ‘덕통사고(아이돌이나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걸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신조어)’를 겪었다는 작가는 “팬질에 나섰던 개인적 경험을 기록하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이야기는 아이돌에 대한 사랑을 열렬히 앓는 만옥과 그 사랑을 객관적으로 기록해 나가는 m, 만옥을 사랑한 남자 등 세 화자의 언술로 전개된다.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아이돌 팬 문화, 세인들이 한심하게 바라보는 팬질·덕질이 주제라면 가볍고 트렌디한 청춘 소설 정도로 낮잡아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팬덤을 또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보는 다른 관점과 밀도와 깊이, 세련미로 짜임새 있게 정련된 문장들은 대학생 작가라고 보기엔 단수가 높다. 기존 순문학 지형에서는 보기 드문 아이돌 팬덤을 실감나게 증언하는 문학적 기록이라 해도 좋겠다.

입술이나 손 등 신체의 한 부위만으로 멤버를 구분해 낸다거나, ‘오빠’가 먹고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빈 굴짬뽕 그릇을 본 것만으로도 세상 다 얻은 듯 자족해한다는 등 팬질에 대한 세밀한 묘사도 흥미롭다. 하지만 “팬의 사랑을 다룬다는 게 중요한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에 작품의 방점은 찍혀 있다. 대상과 관계 맺음은 불가능하지만 이 역시 사랑이라는 보편적이고 매혹적인 경험의 하나라고 말이다.

이 작품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휴학생 m이 서술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m은 N그룹의 멤버 M을 사랑해 사인회, 공개방송, 행사 등을 열성적으로 찾아다닌다. m은 자신의 체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 소유하고자 하는데 그녀에게 그 수단은 문장이다. m이 있는 곳에서 무대 위의 M은 겨우 작은 점처럼 보일 뿐이기에, 그녀는 문장을 통해 그 찰나를 세밀하게 남겨두려는 것이다. 그리고 m은 수많은 연애소설을 찾아 읽으면서 자신이 겪는 사랑의 외로움을 위로받고자 한다. 그러나 연애소설을 읽어나갈수록 m은 더욱 큰 고독을 맛보게 된다. 팬이란 단 한 번의 의미 있는 마주침조차 허용되지 않는, 대상과 전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특이한 사랑을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2부는 m이 공개방송을 기다리는 도중에 만난 ‘만옥’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m이 사랑에 빠진 동시에 그 사랑을 객관화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만옥은 그저 그 사랑에 온몸을 내던지고 열렬히 앓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M을 보지 못하는 날에는 그가 눈앞에 없으니 괴롭고 보는 날에는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니 괴롭다는 것이다. 만옥은 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M의 소속사 근처에 있는-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M이 먹고 건물 앞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빈 그릇을 사진으로 찍어 소중한 듯 간직하며, 무대 위에서 M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선 걸그룹을 보고는 질투에 사로잡혀 분노에 찬 욕설을 내뱉는 등 이 사랑에 순전히 몰입한다.

3부는 만옥을 짝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자일뿐더러 현실세계에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아이돌 M을 사랑하는 만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만옥과 우정을 나눴던 m을 찾아가 만옥과 함께했던 시간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한다. m은 그에게 자신이 모아둔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문장으로 남겨둔 기록들을 전하며 자신이 보고 느꼈던 만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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