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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8일 전, 최후의 만찬 즐기자?

평일 골프 및 술자리까지 ‘헤롱 헤롱’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 A: 기자 “언제 볼 수 있어요?”

B: A기업 관계자 “스케줄이 9월 27일까지 잡혀 있습니다. 다음 달까지 만나기 힘들 것 같네요. 10월엔 어떠세요?”

C: B기업 관계자 “약속이 다음 달까지 꽉 차서 10월 일정을 봐야 할 듯합니다”

재계가 이른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두문분출로 정신이 없다. 관련법이 내달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면 관행처럼 이어져오던 각종 접대자리가 당분간 올스톱 된다.

이에 주요 기업 홍보와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주요 인사와의 미팅 스케줄을 법 시행 전으로 몰아 놓은 상태다. 적게는 50차례부터 많게는 수백 건까지 약속이 잡혀있다 보니 허덕이고 헤롱 거리기 일쑤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30대그룹 100대 기업 홍보 및 대관 담당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시뮬레이션하며 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 주말에 이뤄지던 골프 미팅을 평일에 소화하고, 점심과 저녁 시간을 쪼개 미팅 등을 쉴 틈 없이 진행하고 있다.

평일 골프 예약 급증

골프 8학군으로 불리는 경기도 용인 소재 A골프장 예약 담당자는 “이달과 다음달 평일 부킹 예약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이상 늘었다”면서 “반대로 골프시즌이라고 불리는 10월 예약율은 같은 기간 대비 50% 이상 급감해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과 여의도 일대 한정식 등 고급 식당 역시 마찬가지다. 강남 소재 한정식집 관계자는 “기업이 잡는 예약이 평소보다 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평소 씀씀이를 고려하면 법 시행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들이 최후의 만찬을 즐기자는 듯 무리하게 만남을 갖는 속내는 따로 있다. 전무후무한 법이 등장해 시장에 사례가 없기 때문에 경쟁 기업 동향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저녁 있는 삶 기대?

만남을 갖는 주요 인사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김영란법에 대한 각 기업의 해석을 듣는 중요한 시간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드러내놓을 수는 없지만, 반드시 접대(?)해야 하는 인물에게는 법 시행 전에 회포(?)를 풀겠다는 또 다른 의미도 존재하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보와 대관업무 담당자들이 밤낮 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사무실에 부재중인 경우가 많아, 업무 협조 등을 요청해도 상당시간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다고.

A기업 대관 담당자는 이에 대해 “솔직히 법에 맞춰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취지는 좋지만 당분간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동향 파악 등 여러모로 챙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무리하게 미팅을 소화하고 있다. 차량에 골프용품을 싣고 다닌 지도 오래”라고 말했다.

B기업 홍보 담당자는 체력적 한계를 호소하는 동시에 희망을 얘기했다. 그는 “홍보팀에 들어온 후 정상적으로 퇴근한 적이 없다. 가족과 함께 하지도 못하고, 위와 간은 이미 내 것이 아닌 게 됐다”면서 “법이 시행되면 당분간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운동으로 건강을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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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도 몸살

공공기관도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각종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소속 직원이 골프접대를 받거나 향응 접대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적발돼 물의를 빚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들이 서울 소재 한 병원 관계자로부터 골프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사실’로 이달 들어 판명되면서 충격을 줬다. 관련 직원은 감사 결과에 따라 중징계 처분을 받을 예정이다.

공무원도 근무 시간에 골프를 치거나 향응을 제공받다가 적발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 감사위원회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말까지 이어지고 있는 특별감찰에서 근무 시간에 골프를 치거나 향응을 제공받은 상수도사업본부 일부 공무원들을 적발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상수도사업본부 소속 공무원 A씨는 특별감찰 기간 동안 몸이 아프다며 4차례에 걸쳐 무단 퇴근한 뒤 골프를 치다가 적발됐다. 또 같은 사업본부 급수부 직원 6명은 업무관련 업체로부터 한 사람에 5만 4천 원에 달하는 점심 접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는 단돈 1000원만 받아도 처벌하는 이른바‘박원순법’을 시행중인 가운데 이 같은 일이 벌어져 당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가스공사도 술ㆍ골프 접대 등으로 감사원 조사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가스공사 직원이 협력업체 직원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4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실지감사를 벌였다. 현재는 감사보고서 작성 등 내부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가스공사 직원 30여명은 CCTV 구매와 관련해 판매 협력업체에 주기적으로 술ㆍ골프 접대, 회식비 등을 받았다.

이 비리는 공직비리 기동 점검을 하다가 포착했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가스공사에 대한 감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또 가스공사는 배관망 등 공급관리 시설 감시를 위해 정기적으로 외부 업체로부터 CCTV를 대량으로 구매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장기간 유착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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