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피시방이 카드결제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신용카드 소액결제가 일반화 됐지만 대다수 PC방은 현금 결제를 고집하고 있는 것. 더욱이 내부에 ATM(현금자동입출금기)기를 설치해 놓고, 현금 지불을 종용하는 배짱 영업으로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일부 피시방은 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도, 현금만 받는 등 소득세 탈루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어, 지자체 등의 관리감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3일 본지가 서울 신촌과 서대문, 동대문구 등 서울 시내에 위치한 10곳의 피시방을 취재한 결과, 10곳 중 8곳이 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카드 결제를 고의로 거부했다.

심지어 카드 단말기를 설치했다가 없애버리거나 아예 피시방 내부에 ATM기를 설치해 두고 현금을 인출해 요금을 내라는 식의 배짱 영업을 벌이기도 했다.

충정로 인근에 산다는 대학생 이모(남/28세)씨는 “평소 카드만 가지고 다닌다. 피시방에서 카드 결제를 거부당해 당혹스러운 적이 있었다”며 “현금만 받겠다는 건 매출을 불투명하게 해 탈세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세청 뭐하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대다수 피시방이 카드 결제를 자연스럽게 회피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인티켓발급기’를 설치하고 있는 것.

카운터에서 일일이 계산해주며 현금결제를 강요하던 기존 방식에서 자판기처럼 현금을 넣으면 피시방 이용 티켓을 시간 단위로 끊을 수 있도록 변화한 것이다. 본지가 무작위로 조사한 10곳의 피시방에 모두 이 기기가 도입돼 있었다. 무인티켓발급기는 현금 투입구만 존재할 뿐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드러내 놓고, 현금 지불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배짱영업인 셈이다.

세금 탈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감독당국의 행정력에 한계가 있다. 카드 단말기 설치는 권고사항에 불과하고, 제재 조치도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해 벌금 등을 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연매출 2400만원 이상 사업장에만 카드 단말기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면서 “카드 단말기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제를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카드 결제 거부 사실이 적발되면 총 결제금액의 5%를 과태료(가산세)를 부과한다. 하지만 카드 결제액이 미미한 만큼, 효율적인 제재조치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만원을 카드로 결제하려다 거부당해 국세청에 신고한다면, 업주는 500원의 가산세만 내면 그만이다.

또 대다수 피시방이 연매출 2400만원 이상을 올리고 있지만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카드 단말기 설치 권고는 말 그대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국세청 전자세원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세금 탈루를 목적으로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영세사업장도 있겠지만 모든 사업장을 조사하기엔 행정력이 부족하다”라며 “피시방처럼 소액결제가 많은 사업장은 카드 결제 수수료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영세 사업자 보호 차원에서 눈감아주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영세사업자 보호를 위해 눈감아준다는 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연매출 2억원 미만의 영세사업자의 경우 카드결제 대금의 0.8%만 수수료로 내면 된다. 즉, 1000원을 결제하든 10만원을 결제하든 업주가 카드사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율은 같다. 1000원을 카드로 결제하면 8원의 수수료가 발생하고, 만약 카드 결제로만 연매출 2400만원을 벌어들였다면 수수료로 약 17만원만 내면 된다는 말이다. 소액을 결제했다고 해서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세무당국의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드러난 셈이다.

탈세가 목적이다!

피시방의 카드 결제 거부는 탈세가 목적이라는 지적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수수료율 때문에 카드기 설치를 안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피시방 업주들의 탈세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대문역에 위치한 S피시방 점주는 카드 단말기 미설치에 대한 질문에 “노코멘트 하겠다”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카드기 설치는 업주의 자유지만, 그것이 매출을 불투명하게 함으로써 세금 탈루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 업주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현금 결제 관행이 자리 잡은 데는 피시방의 주 고객이 학생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은 신용카드, 체크카드보다 부모님께 받은 현금으로 피시방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카드 결제 거부가 곧 세금 탈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성인보다 부족해 이런 관행에 둔감하다.

반면 카드 결제에 민감한 성인들이 많이 몰리는 피시방은 상황이 달랐다. 카드 결제를 허용하고 있는 신촌의 한 피시방 업주는 “대학가라서 아이들보단 성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야 했다”면서 “신촌, 홍대 등 성인들이 많이 몰리는 피시방에는 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이 많지만 다른 곳은 거의 현금만 받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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