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오거리 전경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부동산 투기 열풍이 남산 아래 첫 마을 서울 용산 해방촌에 불어 닥치고 있다. 경리단길 상권이 해방촌으로 확대되면서 해당 지역 건물 매매가와 상가 임대료 등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더욱이 강남 큰손과 유명 연예인 등이 가세하고, 기획부동산이 판을 치면서 투기조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증되고 있다. 실제로 1년 사이 해당 지역 평균 매매가는 3.3㎡당 최소 1.1~1.7배로 뛰었다. 일부 지역은 최대 4.7배 상승했고, 월세는 40~50% 오르면서 우려가 현실이 된 모습이다.

이 때문에 영세상인 등은 신흥 상권에서 반복되고 있는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인해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매매가 폭등, “심상찮다”

지난 8일 오후 3시 젊음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해방촌 모습은 겉으로는 평온했다. 6호선 녹사평역에서 해방촌 오거리까지 신흥로를 따라 형성된 상권은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종점약국 앞 기업은행 365코너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해방촌 상권은 종점약국 앞에서 해방촌오거리 사이의 중간까지 확대됐고 해방촌 오거리를 향해 나가는 중이었다. 해방촌 상권이 점점 확대되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해방촌 상권은 경리단길 상권이 2년~3년 전부터 녹사평역 부근으로 확대되면서 형성됐다.

더욱이 미군 용산기지 이전과 도시재생사업 등 호재와 맞물려 강남 큰손, 유명 연예인 등의 투자가 몰려 부동산 매매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해방촌 일대 부동산 관계자 및 상인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업소 한 관계자는 “해방촌 일대 평균 매매가는 입지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3.3㎡당 최저 1700만~최고 2000만원에 거래됐다”고 설명한 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한 매매가가 현재는 최저 2200만~최고 3000만원으로 폭등했다”고 전했다.

이어 “신흥시장 내 상가는 이달 들어 3.3㎡당 최고 8000만원에 거래됐다”며 “미군 용산기지 이전, 도시재생사업 등 호재를 고려해도 부동산 거품이 심각하다. 자칫 거래가 실종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기획부동산이 해방촌 단독주택과 상가 등의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최근 들어서는 강남 거주 투자자들로 건물주가 바뀌면서 부동산 매매가와 월세 등이 대폭 올랐다. 매물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큰손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들도 해방촌 투자대열에 합류했다. 방송인 노홍철은 신흥시장내 지상 3층의 단독주택(서울 용산구 신흥로 99-8)을 최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택은 현재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며 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가수 정엽도 신흥시장내에 소재한 점포(현재 음식점 영업 중)를 인수했다. 정엽은 해당 점포주와 약정한 영업기간이 종료되면 리모델링 공사 후 바를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방송인 노홍철이 해방촌에서 매입한 단독주택(왼쪽)과 가수 정엽이 바를 운영할 목적으로 사들인 점포(오른쪽) 전경.

거리로 내몰리는 상인ㆍ주민들

해방촌 상권이 뜨겁게 타오르면서 영세상인과 청년창업자 등은 큰 폭으로 뛴 월세 부담과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과거 홍대와 가로수길 상권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기존 세입자를 내쫓았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방촌 신흥시장에서 의류 관련업을 하고 있는 A(50대ㆍ여)씨는 “시장 부근 임대료가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월 25만원의 임대료를 내다가 최근에 건물주의 요구로 월세를 40% 가량 올려줬다”면서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료까지 올려줘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카페를 운영 중인 김모(남ㆍ30세)는 상당히 격앙됐다. “해방촌 신흥시장 일대는 교통이 불편하다. 이 때문에 보증금과 임대료가 저렴한 편에 속 한다”면서 “2년 전 카페를 창업했고, 그동안 단골도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어 “올 7월 건물주가 소위 강남 큰손으로 바뀌면서 일방적으로 임대차 계약해지 통보를 받아, 내쫓길 처지에 놓였다”며 “그동안 투자한 게 얼만데 일방 통보로, 길거리로 내모는지 기가 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모씨는 현재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으며,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계약 연장(최대 3년)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홍대와 가로수길의 사례를 볼 때 ‘을’의 눈물을 흘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해당 건물주는 서울 강남에 주소를 두고 있고, 현재 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임대인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한 부동산투자회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은 김모씨뿐만이 아니다. 월세살이를 하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역시 힘겨움이 예고되고 있다.

신흥시장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70대 박모(남)씨는 “계약서 없이 월 10만원에 살았는데, 주인이 바뀌면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갈 곳이 없다. 서울 하늘 아래 몸을 누일 곳이 없다는 게 서글프다”고 한탄했다.

한편, 용산구청은 해당 지역 영세상인과 저소득층의 생활권 보장 등을 위해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 제정을 앞두고 있다.

또 건물 및 토지주들과의 상시 대화를 통해 큰 폭의 임대료 상승을 자제해 달라는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용산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 대상지인 신흥시장의 토지 및 건물주 등에게 향후 6년 간 임대료 동결 서명을 받고 있다”면서 “영세상인과 저소득층 등의 민원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남산 아래 첫 마을 해방촌은…

해방촌은 남산 아래 첫 마을로 서울시 용산구 용산2가동 일대를 부르는 지명이다. 해방촌은 일제 강점기 종식 후 이북에서 내려온 오갈 곳 없는 실향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후 형성된 마을이다. 이 때문에 이곳 거주자들은 중산층보다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해방촌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단독주택 모습을 갖추게 됐다. 당시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기존 판자촌을 없애고 단독주택으로 조성해 분양했다. 당시 조성된 단독주택 공급가는 3.3㎡당 300만원이었다.

해방촌 입지 조건은 상당히 열악하다. 지대가 높고, 도로가 협소해 대형마트 등 편의시설이 전무하다. 또 지하철 등 대중교통 진입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은 마을버스를 타고,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 지하철 등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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