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 답변에 의원들 울화병

 

국정감사는 정치인들이 ‘스타’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 것일까. 무거워 보이기만 하는 국감에서 별나고 톡톡 튀는 말로 청중을 사로잡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몇 명의 정치인들은 이미지 쇄신과 상승을 위해 국감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번 2009년 국정감사에서도 남들과 다른 언행으로 화제를 몰고 오는 인물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들의 금쪽(?)같은 발언들을 모아봤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2009년 국정감사. 첫날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까지도 피 튀기는 공방과 설전이 계속되고 있다. ‘비꼬기형’부터 ‘촌철살인형’까지 질의와 답변 방식은 가지각색이다.
 
비꼬기 형
 
인사청문회나 국감에서 상대방의 언행을 비꼬는 방법은 매년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기술’이다. 올해 국감에서도 비꼬기 기술은 어김없이 등장해 감사 대상자들을 당혹케 했다.

지난 달 29일 정운찬 총리가 취임식에서 ‘가마를 타게 되면 가마꾼의 어깨를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실천 하겠다’는 발언이 박상돈 자유선진당 의원에게 말꼬리를 잡혔다. 박 의원은 “가마가 어디 있나. 가마는 왕조시대 때 있었다. 그 때는 재상이 가마를 탔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런가? 총리 일성으로 한 말치고는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6일 지식경제부 국감에서는 ‘엿’이라는 비속어가 나오기도 해 화제가 됐다. 사건의 주인공은 지경부의 한 사무관. 국감를 위해 박순자 한나라당 의원은 지경부 측에 자료를 요청했고, 사무관은 “국회에서 국감 한다면서 엿 먹으라고 자료 요구 했는데 엿 먹여 드려야죠”라는 발언으로 응수 한 것. 흥분한 박 의원은 국감에서 이 일화를 폭로, 지경부 장관에게 사과를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또한 같은 날 환경부 감사에서는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계속되는 질의에 연신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4대강 살리기’에 대해 이 장관이 구체적인 수질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채 ‘문제없다’는 식의 발언으로 일관. 이를 듣고 있던 추미애 한노위 위원장이 “환경부 장관이 국토해양부 파견직원처럼 답변 한다”고 지적해 이 장관을 면목없게 만들었다.

이어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4대강 사업을 추진 시 수질 문제의 심각성을 피해갈 수 없다며 “이만의 장관 정신차리세요”라는 질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이 장관은 “정신 멀쩡합니다”라며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한 건’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이 김칠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에게 “감사원의 인권위 감사는 표적감사가 아니지 않느냐”고 질타하자 침묵을 지키던 박 의원이 “좋은 정권에서 일하기를 기다리세요”라며 삐딱한(?) 말투로 응수했다.
 
대답회피 형
 
무겁고 딱딱해 보이기만 하는 국정감사이지만 가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종종 일어난다. 주로 날카로운 질의를 어설프게 회피하려 하거나, 질의와 맞지 않는 동문서답을 할 경우에 생긴다.

지난 7일 국토해양부 국감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4대강 사업이 질의의 핵심이 됐다. 최규성 민주당 의원이 4대강 사업을 추진해야 되는 다섯 가지 이유에 대해 질문하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물 확보, 수질 개선 등 특히 재해예방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때 최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4대강 사업이 오히려 홍수를 조장할 것이라는 반박자료를 꺼냈다. 칼자루를 손에 쥔 최 의원이 “이 자료에 동의하냐”고 묻자 진퇴양난에 빠진 정 장관은 잠시 고민하다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의원이 “왜 보이지 않는 않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정 장관은 “(너무 멀어서)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내엔 웃음이 번졌고, 최 의원은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지난 5일 총리실 국감에서는 ‘신종 질의방해’ 기술(?)이 탄생했다. 국제개혁 문제에 대해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총리실에서는 ‘신속화 방안’이라는 것을 지난 2009년 1월 28월 시행했는데 법적인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고 질의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신속? 그… 정확하게 발음을… 신속…”이라며 어눌한 말투로 즉답을 회피했다. 얼굴이 굳어진 이 의원이 “제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자 관계자는 “…에…, 방금… 신속 극복?…”이라고 동문서답했다.

다시 이 의원이 “신속화 방안”이라고 딱 잘라 말하자 관계자는 그때서야 알아들었다는 듯이 “아, 예 신속화 방안…”이라고 중얼거렸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고 이 해프닝에 웃고 있는 참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한나라당의 한 동료 의원은 “마이크를 고치든가, 못 알아들어서 답변을 못하겠다고 말씀하시면 안된다. 이것은 일종의 질의를 방해하는 행위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의 굳어진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촌철살인 형
 
국감에서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것은 ‘비꼬기’도 아니고, 격양된 목소리로 다그치는 것도 아니다. 바로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촌설살인과 같은 발언이다. 

조경태 의원은 민주당 지난 5일 국무총리실을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 한국 대학교육의 모순을 지적했다. 학기마다 등록금은 몇 십만원씩 치솟는데, 교육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것. 조 의원은 “89년 대학 자율화 이후부터 등록금이 해마다 물가의 200%, 300%씩 올랐다”면서 “그러나 교육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우리 대학은 ‘탐욕의 상아탑’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의원은 “정부가 이자를 대신 갚아주는 차원을 떠나 등록금 원금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시행된 보건복지가족부 감사에서는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돋보였다. 송 의원은 몇몇 지역임상센터에서는 정부 출연금인 기술정보 활동비로 수차례 술값을 지불했고 요정까지 출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장내는 술렁였고 송 의원의 공격은 계속 됐다.

송의원은 “이들은 정부 출연금을 이용해 최고급 요리 집을 찾아다니며 3억원 가량을 소비했다”며 “식품영양학회 활동인지 미식가협회인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복지부 관계자들의 얼굴이 굳어지자 김시관 복지부 감사관은 “의원님의 지적으로 밝혀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고 말했다. 진심을 담은 감사의 뜻인지, 빈정의 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은 후자에 가까웠다.

김황식 감사원장도 한 방 맞았다. 김 원장은 고위공직자 직무감찰 실적과 임진강 사건 등에 대해 현재는 상황 판단을 위한 최적기가 아니니 시기가 지난 뒤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원장의 발언을 들은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감사부와 감사원들이 종이 호랑이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격양된 목소리로 질타했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몸으로 실천하는 열혈 ‘의원’들
실험부터 현장고발까지 다양한 방법

‘국감스타’가 되기 위한 길을 멀고도 험하다. 다른 의원들보다 확실히 튀어야 국감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감스타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한 방의 폭로’가 아니라 ‘튀는 행동’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의원들이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국방무 국감 현장에서 ‘즉각 취식형 전투식량’을 데워보는 실험을 했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워나며 장내에 번지자 김 의원은 “수증기 때문에 아군의 위치가 적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발로 뛰는 방법도 인기다.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 국감에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직접 인터뷰한 동영상을 틀어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프랜차이즈 가맹주들과 본사간의 불공정 거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가맹업소 10곳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안전검사에서 불합격한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는 지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수도권 30여 곳의 건물을 둘러봤고, 그중 4개의 엘리베이터가 불합격임에도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박’은 강운태 민주당 의원이다. 강 의원은 전문가를 의뢰해 불법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환치기(외환은행을 거치지 않고 외환을 거래하는 불법 행위)’에 성공한 사례를 들고 나온것. 강 의원은 지난 8일 이와 같은 재산도피와 탈세 등의 불법 행위가 만연해 있는 문제에 대해 관세청 국감에서 대책을 추궁해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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