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형 뺨치는 절도 기술


수십억원대 절도단이 검거돼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에 확인된 결과, 이들은 7개월 여간 52곳을 털어 30억원 이상의 금품을 절취했다. 이들의 주요 범죄 무대는 부유층들이 거주하는 고급아파트와 빌라촌이었다. 이번 사건은 1980년대 초 ‘대도 조세형’ 사건과 비교되고 있다. 이들의 범행 수법이 다양하고 노련했으며 또 다시 부유층을 상대로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관심을 끄는 대목은 경찰 조사결과 피의 사실이 축소되었거나 피의자가 있는데 피해자는 없다는 점이다. ‘세기의 도적’으로 남을 이들의 범행 전모를 들여다봤다.


지난해 9월, 피의자 김모(40)씨는 장충동의 한 도박장을 찾았다. 김 씨(특수강도 등 전과 14범)는 출소 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또 다른 범행을 위해 공범을 물색하러 간 것이다.

이곳에서 김 씨는 정모(26)씨와 소모(26)씨를 만났다. 무직자인 이 둘은 김 씨의 솔깃한 말에 현혹됐다. 김씨는 이들에게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는 내 금고나 마찬가지”라며 “내가 ‘대도 조세형’ 보다 아파트를 훨씬 잘 턴다”라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이 후 김 씨는 청송교도소 수감생활을 같이 한 제소자 중 범행에 도움이 될 만한 공범을 끌어들이고 총 10명의 인원으로 ‘절도단’을 구성했다.


‘완벽한’ 사전 준비


이들은 범행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 먼저 물색조, 운반(운전)조, 침입조, 장물처분조 등으로 철저히 분업화시켰다. 이들의 분업화는 ‘프로’처럼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만약 자신들 중 일부가 검거되면 공범들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열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비밀을 지켜주면 검거되지 않은 공범들이 변호사 선임 등 옥중 생활을 책임(옥바라지)져 주기로도 사전에 계획했다.

이후 물색조와 운반조는 범행 장소를 물색했다. 주요 대상은 부유층 거주지역의 고급 아파트와 빌라촌. 이들은 승합차를 이용 강변대로와 올림픽대교를 넘어 다니며 광장동, 압구정, 잠원동, 방배동 등의 고급아파트를 범행 대상으로 정했다.

특히 이들은 범행장소로 압구정과 광장동의 아파트를 선호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곳의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되어 방범시설이 허술한 반면, 부유층이 많이 거주해 이들 사이에선 보물창고로 통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큰 평수의 집을 찾기 위해서 에어컨이 3대 이상 설치되었거나 베란다가 넓은 곳을 범행장소로 선정했다. 큰 평수의 아파트들 대부분이 개인 금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이 범행을 벌인 집들이 대부분 231(70평)㎡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더욱 완벽한 범행을 위해 큰 평수의 아파트 중에 CCTV 등 방범시설이 미흡한 지점을 파악했다. 또 경비원들의 이동시간 및 경로를 미리 확인해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기막힌’ 절도 수법


사전 답사를 마친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범행을 시작했다.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가 이들의 주요 범행 활동 시간이었다. 물색한 장소에 오랫동안 불이 꺼져있는 것을 확인하고 빈집이란 확신이 들면 침입조가 집에 침입했다.

또 3층 이상은 대부분의 집들이 창문을 열어 놓기 때문에 이들은 이점을 이용했다. 침입조는 3층 이하의 저층은 가스배관을 타고 올랐으며 고층은 옥상으로 올라가 로프나 건물에 미리 설치된 케이블 선을 타고 내려와 베란다로 침입했다. 침입 후 바로 현관문의 잠금 장치를 파손시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경찰은 이들의 절도 기술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번 사건의 수사를 맡은 한 경찰은 “이들은 3층까지 올라가는데 담배 한 대 피울 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70평이 넘는 집을 싹쓸이하는데도 최소 10분에서 최대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이들의 민첩성과 기민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 “침입조는 주로 김 씨가 담당했는데 기계체조 선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찌 보면 기계체조 선수를 능가한다”면서 “금고 여는 시간이 만만치 않은데 조사결과 1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놀라움을 드러냈다.

경찰에 따르면 침입조는 대개 1명에서 2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주로 김 씨가 침입조를 맡았다. 대부분이 김 씨 혼자 집안에 침입해 10분에서 20분 사이에 한 집을 싹쓸이하고 나온 것이다.

기자가 피해 지역을 직접 확인해 본 결과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보안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압구정의 아파트 경우 각 동마다 경비 초소가 2개씩 있었으며 경비원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런 보안시스템을 뚫고 집에 침입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김 씨의 절도 기술이 빠르고 교묘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김 씨가 금고를 여는데 사용한 도구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드라이버와 노루발못뽑이(빠루) 두 가지 밖에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아파트와 빌라 52곳에서 32억7,000만원 상당을 훔쳤다. 피해품으로는 현금, 수표, 금, 달러화, 명품시게 등 다양하게 조사됐다. 또 피의자 조사 결과 한 집에서 훔친 최고액은 3억여원으로 확인됐다.

장물처분조는 이렇게 훔친 금품을 중고명품샵이나 금은방에 반값에 처분했으며, 이들은 이렇게 얻은 현금을 주로 필리핀 원정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저명인사·부유층 싹 털렸다


경찰은 그러나 수사에서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피해신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시작은 지난해 9월, 한 제보에 의해서였다. 올해 4월, 이들 일당 중 장물아비 1명을 검거했지만 이들이 미리 약속한 것처럼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고 밝혔다. 장물아비로부터 압수한 장물들은 피해신고가 되어있는 품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 일당을 잡아들일 수 있는 단서(증거)가 되기 부족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특히 피해사실을 축소 신고하거나 전혀 인정하지 않아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장물의 일련번호와 피해신고품의 일련번호만 맞았어도 수사 마무리가 빨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후 경찰은 집요한 통신 분석 수사와 특별 수사를 통해 이들 일당을 5개월 만에 검거할 수 있었다.

이번에 검거된 일당에게서 압수한 장물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었으며 외국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품목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피해자 중에는 의사, 법조인 등 전문직종사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이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대부분 피해자였다”면서 “이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거나, 피해품목이 신고되지 않은 고가의 물건이라는 점 때문에 신고를 숨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훔친 사람은 있는데,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은 없는 다소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라고 전했다.

서초경찰서는 지난달 28일, 서울·경기지역 70평형 이상의 고급아파트와 빌라에 침입해 52회 걸쳐 30억 이상의 금품을 절취한 절도범 김 씨 외 9명을 검거했으며 이중 7명에 대해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추가로 밝혀진 장물업자 3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피해품 회수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 일당의 또 다른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중인 것으로 밝혔다.

이번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한 경찰은 “절도 사건의 피해를 당했다면 신속하게 신고를 해줄 것”이라며 “사건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경찰에 밝혀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 될 수 있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문수영 기자

trueyoung@ymail.com







<‘대도 조세형’은 누구?>


‘대도 조세형’이 30여년이 지났음에도 다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부유층을 상대로 한 고액절도단이 검거되면서부터다.

조세형, 그는 단순 절도범이었다. 절대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아직도 세인의 기억에 남는 이유는 큰집만 골라 고가의 물건만 털었기 때문이다. ‘대도’라고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당시 경찰의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조 씨는 1975년에 명륜동의 한 대기업 사장 집을 드라이버로 창살을 뜯고 들어가 현금 250만원과 자기앞수표 250만원을 털었다. 또 귀금속으로는 천연진주, 브로치 2개, 다이아반지 등 모두 2,628만원 상당을 절취했다. 이외에도 5차례에 걸쳐 고급주택에서만 당시 금액으로 8,387만원 상당을 훔쳤다.

조세형은 출소 후 1982년에 또 다시 국회의원과 부자들 집만을 골라 10차례에 걸쳐 56,161만원 상당을 절취했다. 특히 당시 1억짜리 다이아를 훔친 것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특징은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유명인사만 골라서 털었다는 점이다. 또 대담하게도 대낮에만 절도 행각을 벌였다.

이밖에도 그의 기행이 관심을 모았다. 그가 길을 걷다 걸인들에게 몇십만원씩 주기도 했으며 화가 나면 훔친 수백만원대 금시계를 하나씩 깨뜨리며 화를 삭힌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더욱 화제를 모았던 점은 조 씨가 훔친 물건 중 상당수가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약 200여점의 귀금속을 훔친 것으로 경찰에 자백했지만, 피해자 진술에서는 서로 주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후문에는 그가 공소장에 5억원 정도로 진술했으나 실제 10억이 넘을 것으로 추측이 되기도 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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