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명절증후군, 남편이 달래줘라

성남에 사는 주부 박모(34)씨는 명절을 앞두고 늘 신경이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매년 추석 때마다 충남 예산의 시댁을 찾지만 내려갈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오랜만에 먼 곳에서 모인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여 함께 웃으며 즐기는 시간들은 즐겁고 기쁘지만, 20여명이 넘는 대가족들의 매끼 식사와 다과상을 차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씨는 “명절 내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며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게 되고 명절이 지난 후에도 히스테리 증상이 한동안 지속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라

이젠 아내의 스트레스를 남편도 함께 나눠야할 때가 왔다. 남녀평등이 아직 뿌리깊게 배지 못해서인지 명절의 모습은 여성들만 분주하다. 명절이 되면 아내들은 연휴 내내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집 안팎을 청소하며 차례상을 준비하는 등 혹독한 육체 노동을 치르곤 한다.

하지만 고된 육체 노동보다 정작 아내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들의 모습이다. 본가에만 들어서면 작정이라도 한 듯 가만히 앉아 이것저것 시키는 모습에 천근같은 육체피로가 만근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예컨대 아내들이 일하면 남자들은 술을 마시며 그동안의 못다한 얘기들을 나눈다. 주방과 거실에서 한참 음식만들기에 땀을 흘리고 있는 아내에게 떨어진 술과 술안주를 내오라고 ‘주문’한다. 때론 어떤 남편은 자신이 집에서 싸들고 온 생활필수품을 찾아보지도 않고 모두 아내에게 찾아 달라고까지 한다. 명절날 우리네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한 여성은 “남편이 집에서는 설거지를 해주는 등 곧잘 집안 일도 도와줬는데 시부모님 눈치 때문인지 이상하게 명절 때 시댁만 오면 눕기 바쁘다”며 “명절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무조건 시키고 볼 때면 한 가정의 아내에서 남의 집 파출부로 전락한 기분까지 든다”고 서러움을 표현했다.

시댁 식구들을 위해 여러 가지의 불만을 참아내고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는 우리의 아내들을 위해 이제 남편들이 나서야 할 때다.

전문가들은 우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내가 어디 주방에 들어가느냐”는 군소리가 신경 쓰인다면, 떨어진 술이나 술안주 정도는 직접 챙겨다 먹는 노력이라도 기울여보자. 정말 쉬운 일이지만 실천하는 남자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식구들과의 식사 후 식탁이나 밥상 정리를 거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설거지까지 직접 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괜한 자존심 혹은 어른들의 시선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면 대신 식후 디저트를 직접 준비해주는 배려심을 발휘해보자. “당신이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했으니까 커피는 내가 탈게” 정도의 ‘닭살멘트’를 날려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남편이라면 일하고 있는 아내를 슬쩍 바깥으로 불러내 보자. 마치 특별한 용무가 있는 듯 아내를 불러낸 뒤 “힘드니까 잠깐 쉬라”는 말과 함께 어깨라도 토닥여 주는 것이다. 이런 남편의 센스에 감동 받지 않을 아내는 없다.

아주 작은 실천이 아내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처가’에 충성하라

명절 스트레스에 지친 아내의 얼굴에 보름달을 뜨게 하는 방법은 또 있다. 처가에 대한 충성이다. 이는 시댁과 처갓집을 방문하는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고 장인·장모에게 풍성함을 안겨드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과거 ‘주부들이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주제로 한 설문에서 시어머니의 “더 있다 가라”는 답변이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이 조사결과는 아내들이 시댁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친정에 대한 그리움과 지친 육체의 휴식을 위해서다. 신경정신과 한 교수는 “남편들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시댁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은 아내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남편이 ‘눈치껏’ 엉덩이를 떼어 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명한 남편이라면 시댁에서 보낸 시간만큼 처갓집에도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특히 장인·장모에 대한 ‘정성’은 ‘사랑받는 남편’의 척도다. 일단 ‘물량공세’가 중요하다. 일부 남편들은 시댁과 처가에 풀어놓은 선물 보따리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시댁에 풀어놓은 보따리는 풍성한데 비해 처갓집의 것이 빈약할 때 아내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흔한 말로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 원칙을 명심하자.

아내들은 남편이 처가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낄 때 큰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런 아내의 심리에 대해 심리학 전문의는 “아내들은 남편이 처가에 잘할 때, 자신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모습의 부부는 가정생활에서 단단한 결속력을 갖게된다”고 남편들의 적극적인 ‘처가 사랑’을 추천했다.

둘만의 여행을 떠나라

아내들은 추석 연휴를 힘들게 보낼수록 신혼 전의 남편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떠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줄께”라는 결혼 전 달콤한 약속과 연애시절 자상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더욱 우울감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석 연휴 내내 우울했을 아내를 위해 가벼운 이벤트를 준비해 보는 것을 어떨까.

특히 단 둘만의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대단한 곳이 아니어도 좋다. 가볍게 손을 잡고 산책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명절 내 지친 아내를 위로하기 충분하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내들은 그런 남편의 배려를 가장 원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허락되면 가까운 호텔에서라도 1박을 하며 신혼 초의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현재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호텔과 여행지에서는 패키지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수고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조금만 더 부지런해진다면 사랑 받는 남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 아내에게 제일 좋은 특효약은 ‘남편의 위로’로 조사됐다. 사랑의 복지재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업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 해소책이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나왔다. 명절로 인해 심신이 지친 아내에게 가장 큰 명약은 남편의 ‘관심’인 것이다.

가정의학과의 저명한 한 교수는 “아내들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감기몸살에 걸리거나 우울증이 심해지기도 한다”며 “여기저기가 쑤시는 등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이상 증상들을 보이며 병원을 찾는 여성들이 늘어난다”고 ‘명절증후군’을 경계했다.

추석의 다른 말은 ‘황금연휴’다. 그러나 올해는 주말이 포함돼있는 연휴라 2박3일 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와 같은 추석연휴를 보내게 되는 아내들에게는 빨리 지나가기만을 고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들에게 남편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함께 한다면 ‘오곡백과 풍성한’ 행복한 명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문수영 기자
trueyoung@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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