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일가 경영승계·지배구조가 삼성 계열사 망친다

국내 최대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잔인한 가을을 맞고 있다.
X파일 사태와 관련, 이학수 부회장에 이어 김인주 사장 등 삼성 구조조정본부 핵심멤버들이 잇따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가운데 이건희 회장도 소환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과 관련,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 등에게 실형을 구형한 검찰이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설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시민단체와 정계 일각에서 이건희 회장 소환 및 사법처리 요구가 일고 있는 가운데 이건희 회장 일가의 편법 증여를 통한 경영권 세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이 재부각되면서 ‘반삼성’ 분위기가 ‘반이건희’ 기류로 이어지고 있다.

경영승계 중심축 ‘에버랜드’

최근 검찰은 재벌관련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과 관련,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에게 징역 5년을, 박노빈 에버랜드 상무에게는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허 전 사장 등은 지난 96년 11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99억원 어치를 발행하면서 제일제당을 제외한 기존 주주들이 대량 실권한 96억원 어치의 전환사채를 이사회 결의를 통해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현 삼성전자 상무 등에게 주당 7,700원에 배정했다.
당시 에버랜드 전환사채가 약 8만원 정도에서 거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회사에 1,000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끼친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당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은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을 앞두고 조세 부담을 줄이면서 삼성그룹의 전체 경영지배권을 승계하기 위해 실시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당시 경영진이었던 피고인들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만큼 배임죄에 해당한다”며 당시 관계자인던 허 전 사장과 박 상무에 대해 실형을 구형했다.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은 지난 2000년 참여연대 및 법학교수 43명 등이 검찰에 허 사장 등 관계자들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근거 미약’으로 수사를 지연시키다가 지난 2003년 6월부터 본격 수사에 착수했었다.
이후 검찰이 허 사장 등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지난 1월 검찰이 결심 공판을 했지만 담당 재판부가 바뀌면서 1심 판결이 지연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지난달 검찰의 결심 공판에 따라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은 오는 10월 4일 1심 판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처럼 변칙증여 사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에버랜드는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경영승계의 중심축으로 이용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는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지분 25.1%를 보유,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에버랜드를 장악하고 있는 이재용 상무가 사실상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SDI 등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순환 출자를 통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가 에버랜드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현 상태로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최근 참여연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문제의 근원은 이건희 회장 일가에 있는데 ‘삼성공화국’ 비판은 자칫 삼성이라는 ‘기업 흔들기’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이 회장 일가의 소유지배구조가 반삼성 기류의 주된 원인임을 지적했다.

황태자 손실 떠안는 계열사들

X파일 사태로 그동안 불법도청과 삼성의 불법정치자금 제공 및 로비 등에 비난여론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삼성이 아닌 이 회장 일가의 경영과 지배구조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 회장 일가가 에버랜드를 장악해 삼성그룹을 지배하면서 후계 작업을 위한 변칙증여가 도마에 오른데 이어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상무의 인터넷 사업 실패를 삼성 계열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삼성 계열사들의 주주 권리와 재산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이 상무의 부실 인터넷 기업을 삼성 계열사들이 인수하면서 약 38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삼성계열사들은 지난 2001년 이 상무의 부실 인터넷 기업을 인수할 당시에도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로 인해 5,000억원이 넘는 주가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상무는 지난 2000년 초 닷컴기업 인수를 통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룹 구조본의 지원을 받아 총 16개의 인터넷 기업을 인수해 인터넷 사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지 1년 만에 벤처거품이 빠지고 인터넷 기업이 부실화되자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이 상무의 지분을 인수해 손실을 떠안았다.
지난 2001년 당시 이 상무의 지분을 인수하는 대가로 제일기획 167억원, 삼성SDI 37억원을 지불했다.
이처럼 그룹 후계자의 사업 실패로 생긴 손실을 삼성 계열사에서 떠안으면서 삼성의 낙후된 지배구조에 대한 비난과 우려로 삼성 계열사들의 주가가 대폭 하락하기도 했다.
제일기획은 E삼성 주식 75%를 인수해 주가가 16.33%(760억원) 하락했으며, 삼성SDI는 E삼성 주식 11.25%를 인수해 주가가 14.74%(4,440억원) 하락해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현재 이 상무가 투자한 인터넷 회사들은 대부분 부실화돼 삼성 계열사에서 지분을 인수해 손실을 떠안는 방법으로 정리한 뒤 청산절차를 밟고 사라졌다.
이 상무가 투자한 인터넷 회사들은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엠포스 등으로 이 회사들이 부실화되면서 동원된 삼성 계열사는 제일기획, 에버랜드, 삼성SDS, 삼성SDI, 삼성전기, 에스원, 삼성카드, 삼성증원 등이다.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 회장 일가의 불합리한 지배구조가 삼성 계열사들의 성장과 안정을 위협하는 최대의 장애물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총수일가의 재산과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며 “삼성 계열사의 최대 위험요소는 오직 총수일가를 위한 불투명한 지배구조다”라고 꼬집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naver.com




‘이건희·이학수·이재용’을 국감 증언대에 올려라

정계에서 올해 국정감사에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이재용 상무 등 삼성 고위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재경위는 최근 전체회의를 열고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이재용 상무 등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할지 여부를 결정키로 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해 재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이건희 회장 등 삼성 고위관계자의 국감 증인 채택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며, 여기에 열린우리당까지 동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기업인들을 직접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가 민감한 사인인 만큼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노당은 최근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삼성그룹은 그 어디로부터도 그 어떤 통제나 감사를 받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절대화된 경제권력을 무기로 불법 정치자금을 뿌리고 막대한 돈으로 각 분야에 대한 인맥관리를 통해 온갖 탈법불법행위를 자행하고 그를 통해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노당은 이번 국감을 통해 삼성그룹을 총책임지고 있는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 지난 97년에서 98년까지 기아자동차 사태시 삼성 개입여부를 비롯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X파일 불법정치자금 제공, ‘금산법’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개입 여부에 대해 추궁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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