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보좌진과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가족채용 논란이 불거진 후 20여명의 보좌진이 면직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與野 친인척 채용 후폭풍 차단 주력 
"특권 내려놓겠다"…싸늘한 국민 여론

[민주신문=강인범 기자] 혁신을 외쳤던 20대 국회가 구태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며 정치 혁신은 아직도 멀고 먼 길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새삼 깨닫게 했다. 여의도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으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수선하다. 여론의 뭇매가 매섭다. 여야는 싸늘한 국민 여론을 의식해 특권 내려놓기 등 후속조치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정치권의 구태를 또다시 목격한 민심이 돌아설지 지켜볼 대목이다.

정치권이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관행처럼 이어져오던 구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어느 때보다 거세졌다.

여야는 불체포특권 및 보좌진 채용 개선 등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민심을 달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소야대 정국이 정치권 혁신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부 국회의원의 경우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과 관련, "마녀사냥식 여론 몰이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 친인척을 떠나 능력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항변하는 등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이후 박인숙·박대출·강석진·김명연·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추미애·안호영 더민주 의원까지 마치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뻗어 나오고 있다.

더욱이 국회의원 보좌진 친인척 채용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이후 보좌진들이 무더기로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서영교 의원이 과거 자신의 딸을 의원실 인턴으로 채용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21일부터 30일까지 국회의원 보좌직원 20명이 면직 신청을 했다. 29일 하루에만 4급 보좌관 2명과 5급 비서관 2명, 6급 비서 1명 등 모두 7명이 국회를 떠났다. 이는 평소 보좌진 인원 변동 추세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많은 숫자로 알려졌다. 서 의원 외에도 논란이 될 것을 염려한 여야 의원들의 보좌진들도 퇴직한 것이다. 

▲ '가족 보좌진 채용' 논란을 일으킨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은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 의원은 "저로 인해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올해 제 세비는 공익적 부분으로 기탁하겠다"고 밝혔다.
▲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5촌 조카를 5급 비서관으로, 동서는 인턴으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의원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역시나'…싸늘한 민심

혁신과 개혁을 외쳤던 정치권이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구태 정치를 재확인시키면서 국민여론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갤럽'이 1일 발표한 6월 다섯째주 주간 정례 조사에 따르면 서영교 의원으로 가족 채용 논란에 직격탄을 맞은 더민주의 지지율은 23%로 나타났다. 전주(25%) 대비 2%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새누리당도 박인숙 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기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지율이 31%에서 30%로 1%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정의당은 5%에서 6%로 1%포인트 올랐고 국민의당은 14%를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갤럽은 "서영교 의원에서 비롯된 더민주의 가족 채용 논란은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등 여야를 막론하고 추가 사례가 이어졌다"고 양당의 지지율 동반하락 원인을 분석했다. 

국민 여론을 체감한 여야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앞다퉈 자정안을 쏟아내며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통해 보좌진 임용시 해당 의원 본인과 배우자의 8촌 이내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키로 결정했다.

또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엄정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아울러 보좌진이 재직 기간에 본인이 소속한 의원의 후원회에 후원금을 낼 수 없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더민주는 서영교 의원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하고 여론 달래기에 나선 모습이다. 더민주 당무감사원은 30일 만장일치로 중징계를 결정했다.

김조원 당무감사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당무감사원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당무감사원은 윤리심판원에서 의원에 대한 중징계를 요청하게 되며, 최종 징계 수위는 윤리심판원에서 결정된다. 더민주 당규에 따르면 징계는 제명(당적 박탈), 당원자격정지, 당직자격정지, 당직직위해제, 경고 등 5가지로 분류되며, 이중 중징계는 제명 혹은 당원자격정지에 해당된다.

▲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장이 비대위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혁신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여야 "특권 내려놓겠다"

여야는 보좌진 채용 논란을 계기로 이른바 '의원 특권 내려놓기' 법안 마련에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는 30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개혁안 마련을 위한 국회의장 산하 자문 기구를 설치하고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에 나서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여의도 모처에서 정진석(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우상호(더불어민주당)·박지원(국민의당) 원내대표와 만찬 회동을 갖고, 가칭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기구'를 국회의장 산하에 설치키로 잠정합의하고 이 같은 내용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동과 관련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께서 기구 신설 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이에 3당 원내대표들도 모두 동의했다"고 전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산하에 직속기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각 당이 추천한 외부인사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이와 관련 "이번만 믿어 달라'는 정치권 약속은 국민들께 신뢰를 드리지 못했다"며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국민의당 대변인은 1일 논평을 내고 "지금까지 바뀐 것 하나 없이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공약들이 지겹도록 반복돼 왔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정 의장이 불체포특권이 문제가 되니 논의하자고 했고, 정 원내대표가 72시간 내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표결이 안 되면 자동 폐기되는 조항을 삭제하자는 얘기를 꺼냈다"며 "우 원내대표와 저는 구체적 내용은 특위에서 논의하자고 했고, 의장께서 자문기구를 만들든 특위를 제안하든지 하면 꼭 논의를 해보자고 합의했다"고 말했다.

앞서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의결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의원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뒤 72시간 내에 표결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72시간 내 표결이 안 되면 다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법규정을 바꾸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 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의원 특권 내려놓기 관련 기구를 제안한 것과 맞물려 정치권 내에서 급물살을 타는 셈이다.

"지나치다" 볼멘소리

여야가 구태를 청산하겠다고 나섰지만 일부 의원과 보좌진들은 "지나치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업무의 특성상 친인척을 고용하는 게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또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항변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국회의원들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8대 국회 당시에도 이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한 의원들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또 다른 의원은 "수행비서의 경우는 지역 행사가 많다 보니 평일에는 늦게까지 근무하는 게 다반사고 주말도 쉬지 못할 정도로 업무 강도가 강하다.친인척을 고용하는 게 의원 입장에서 마음이 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아니냐". "능력 여하는 둘째치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지나치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이 문제가 매 해 반복적으로 불거지다 보니 친소 관계에 있는 의원들끼리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서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품앗이하기도 한다. 해당 의원실에 취직한 친인척이 동료 보좌진들에게 의원과의 관계를 이야기 하지만 않으면 사실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고도 귀띔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좌관은 정치권의 이 같은 현실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현직 국회의원 보좌관은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보좌관 등록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의원의) 딸이나 조카, 친척인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들이) 지금 밝혀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원들의 가족 보좌관 채용이 알려지면 보좌관들의 반응이 어떤가'라는 진행자 질문에 "사실 좀 자괴감도 든다"며 "그러니까 밖에서 보좌관들을 폄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토로했다.

이 보좌관은 또 "보좌관들이 부처를 많이 상대하는데 그들을 대하기가 민망하다"며 "그러면 보좌관들이 자신이 없어져서 의정활동의 질이 떨어진다"고 털어놨다.

한편 이 보좌관은 꾸준히 불거지는 국회의원 보좌관 월급 헌납 사례들에 관해서는 "보좌관, 비서관, 인턴 월급까지 국민 세금으로 주는 돈"이라며 "(의원들은) 그런 의식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건 '내 수당의 일부 중 너희에게 주는 것'이라고 의원들이 생각할 수도 있다"며 "그런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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