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ISA 계좌 가입 후 은행 직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민주신문=복현명 기자] 국민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새롭게 도입된 ISA(개인종합재산관리계좌)가 은행 간 실적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만능통장’에서 ‘무능통장’으로 전락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일부 은행에서는 계좌개설 대필 등 위법행위가 횡행해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강화가 시급해졌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각종 불법 백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자체 정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금융당국이 과열 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는 금융시장의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27일 본지가 주요 시중은행 일선 지점의 ISA 가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A은행의 서울 중구 소재 한 지점은 고객이 직접 작성해야 하는 가입 서류를, 창구 직원이 대필해 일괄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B은행은 업무 마감 후에도 고객 유치를 위한 계좌 개설 업무를 보는 등 위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 뭐하나

A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A모 계장은 “친인척에게 가입을 독려하기도 하고, 고객을 대신해 가입 서류를 작성(대필)해 일괄 처리하고 있다”며 “실적 압박이 상당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B은행 지점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줄기는 했지만 업무 마감 후에도 ISA 가입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중 은행은 대출이나 펀드 등 상품을 판매하면 전산으로 상품코드를 등록해 가입을 완료한다. 은행의 영업시간을 고려하면 평균적으로 오후 5시~5시 30분에 상품코드 등록 전산이 닫혀 입력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B은행의 경우처럼 ISA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해당 전산을 24시간 가동,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일선 은행 지점에서 고객 위임장 대필 등 위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일단 각 은행에 6월말까지 각종 위법행위에 대한 자체조사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은행 보고를 확인한 후 조치 유무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에 대해 “금융당국이 일부 은행의 위법행위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장이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는데 은행에 자체조사를 지시한 것은 금융당국의 책임 회피이다. 금융당국이 혼탁해 지는 금융시장을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객 위임장 대필이 확인된 우리은행 측은 “은행 차원의 내부통제시스템이 미비해 불완전판매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계좌개설 대필 등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선지점을 평가할 때 신규계좌 건수만 살펴보기 때문에 실적 압박을 느낀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깡통’계좌 수두록

ISA는 한 계좌에 예금, 적금을 포함한 주식형·채권형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등 여러 상품을 관리하면서 계좌별로 200만~250만원의 수익까지 비과세 되는 금융상품이다. 

연간 2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까지 납입 가능하지만 1인 1계좌만 허용돼 한번 가입하면 3년~5년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가입자가 직접 상품 구성을 할 수 있는 ‘신탁형’과 금융사의 포트폴리오(MP)를 제시받고 투자권을 위임 받는 ‘일임형’으로 구분된다.

신탁형은 모든 금융사가 출시했고 일임형의 경우 투자일임업자로 등록돼 있는 증권사 위주로 출시됐다. ISA 가입이 가능한 금융회사는 ▲증권사 21곳 ▲은행 14곳 ▲보험사 2곳 등 총 37곳에 달한다. 

ISA는 재산 증식과 세제혜택 등 긍정효과가 부각되며 ‘만능통장’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출시이후 3개월까지의 모습만 보면 ‘만능’보다는 ‘무능’에 가깝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평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월 14일 첫 출시 후 1주일 동안 ▲은행 61만7000계좌 ▲증권사 4만1000계좌 등 총 65만8040계좌가 판매돼 누적 가입자 수 65만명, 가입 금액은 3204억원을 돌파했다. 

출시 후 11주가 지난 지난달 말 한국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입금액은 누적 1조8033억원, 가입자 수는 총 209만816명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업권별로는 은행을 통해 가입한 가입자 수가 187만2229명(89.5%)으로 압도적이었고 유형별로는 신탁형 가입자 수가 193만6040명으로 일임형(15만4776명)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가입금액 역시 신탁형이 1조6583억원으로 일임형인 1450억원에 비해 10배 많았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3만 계좌씩 늘어나고 있어투자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ISA 출시 한달 간 은행권과 증권사에서 개설된 ISA 계좌 150만5657개 중 106만5732개(70.78%)가 가입금액 1만원 이하의 소위 ‘깡통계좌’로 확인됐다.

이에 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불완전판매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ISA는 ‘투자성 위험상품’인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장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ISA는 금융시장에 있어 위험도가 높은 금융상품이다. 이 때문에 깡통계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과당경쟁은 은행들이 고객에게 설명 의무를 소홀히 해 불완전판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수익률을 허위로 신고하는 등 경영윤리에 어긋나는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고 피력했다. 

벌써! 수익률 공개?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일임형 ISA를 판매한 증권사와 은행, 보험사의 3월 수익률을 7월과 8월중에 공개한다. 

시중 은행의 경우 4월 11일 일임형 ISA를 출시한 신한‧KB국민‧우리‧IBK기업은행의 수익률이 내달 10일 공개된다. 또 농협은행은 21일, 지방은행인 부산과 경남은행은 8월 29일 순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수익률 공개가 다가오자 은행권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익률이 공개되면 은행 간 줄 세우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임형은 금융사가 직접 자산을 모델 포트폴리오(MP)만 선택해 구체적인 상품 운용을 맡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률 면에서 금융사의 부담이 크고 수익률 공개가 은행 간 과당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에 대해 “금융당국이 ISA의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해 명의 도용이나 상품 설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가입기간이 최소 5년인 ISA를 3개월 만에 평가한다는 것은 순전히 본래 취지와는 어긋난 것으로써 실제 금융소비자의 재산 증식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ISA가 위험성 상품임에도 홍보에만 급급해 상품의 본질을 매도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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