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경제’와 악연 불구 화려한 복귀



강만수 전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특보로 청와대로 복귀했다. 현재 맡고 있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겸직한다. 사실상 경제분야에서 만큼은 강만수 장관이 ‘이(MB)의 남자’로 확실히 각인되는 순간이다. 한국경제가 ‘천장이 뚫렸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급격한 환율 상승으로 금융위기에 직면해 있던 당시, 정부 경제팀의 수장인 강만수 장관에 대한 민심이반을 우려하는 여권을 비롯 정재계의 불만의 목소리는 드높았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뢰는 무한에 가까울 정도다. 금융위기로 장관임용 1년여만에 옷을 벗었지만 다시 상근직 경제특보로 부활했다. 이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자문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그의 행보에 정치권은 물론 일선 ‘경제 시장’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정부 들어 후임 각료들이 청문회를 마칠 때까지 자기 자리에서 끝까지 일한 장관도 있었고, 물러난 뒤에도 헌신적으로 일한 장관도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그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가끔 전화도 한다”고 밝혔다.

정가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칭한 이 인물들이 현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지목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쇠고기 파동’과 ‘리먼사태’로 야당은 물론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으며 MB 정부가 위기상황일 당시 각 부처의 수장으로 있었던 인물이다. 이 대통령은 이들에게 여전히 남다른 신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 개편에서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 강만수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특보로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공약인 ‘747공약’의 입안자이자, 개인적으로는 82년부터 소망교회를 통해 20년간 교우관계를 유지해온 터라 이 대통령 입장에선 강 장관은 소위 ‘검증된 인사’다. 한번 믿은 사람의 경우 과정에서의 다소의 실수는 평가의 잣대에서 중요시하지 않은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단적으로 나타내는 대목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임할 당시 단기간의 환율 30% 폭등, “내가 언제 고환율 정책 썼냐?” ‘종부세 폐지주장’으로 여권내서도 ‘뜨거운 감자’로 불리며 “더 이상 버티면 좋지 않다”고 강 전 장관을 비난하는 목소리 역시 존재했지만 그는 여전히 MB의 인재풀에서 최우선 순위에 올라있다. 대표적 감세론자로 불리는 강 장관의 전면복귀에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강만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여부도 주요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경제정책 분야만큼은 강 전 장관은 프라이드가 강한 인물이다”면서도 “정책이 아무리 좋더라도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감세에 따른 재정건전성의 휴유증이다”고 말했다.

광화문 국가경쟁력위원회에서 만난 강 전 장관의 측근인사는 임명 배경에 대해 “이곳이 대통령 자문기구 이고 경제특보로 임명되신 상황에서 강 장관의 입장은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하는 것이 맞다”며 임용배경에 대해 말을 아꼈다. 사실상 강 장관의 복귀는 전적으로 인사권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과거 수많은 ‘설화’에 시달렸던 강 전 장관의 입장에선 향후 경제특보로서 이 대통령과 의견교감 외 정책 혼선을 막기 위해 발언은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단행된 MB 정부 인사에서 주목되는 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인사의 급부상이다. 경제특보인 강 전 장관 역시 서울대 법대 출신이며, 신임 공정위원장에 임명된 정호열 전 성균관대 법대 교수는 54년 경북 영천 출신으로 서울 경복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김준규 신임검찰총장 역시 55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 전 장관과 서울대 법대 동기이며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MB 정부의 주요 경제파트는 사실상 서울대 법대라인인의 전면부상으로 명명될 수 있다.


‘MB 노믹스’ 박차


강만수 전 장관은 앞으로 정책을 총괄하는 윤직식 정책실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모토인 ‘MB 노믹스’를 이끌며 국내 경제 시장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강 전 장관은 MB 정부 초기 성적표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이른바 고환율 정책으로 인한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사람들은 그를 서슴없이 지목하기도 했다.

사실상 강만수 장관은 MB 정부를 통해 다시 부활한 모습이다. 강 전 장관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11년 전 그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IMF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그것이다. 이 꼬리표는 1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강 장관을 괴롭히는 족쇄와도 같은 상태다. 혹자는 그와 경제위기가 악연이 있을 정도로 가깝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과거 한번의 실패를 경험한 강 장관에게 믿음을 갖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뢰는 한마디로 전폭적이다. 측근들의 경질 속에서도 그는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케이스다. 야권을 비롯해 경제계의 교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하면서도 그를 챙기는 애정을 마음껏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제통’ 외길 강만수는 누구


강만수 장관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를 거친 후 1970년 행정고시(8회)를 통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 보험국장,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을 거쳐 14대 관세청 청장, 제 3대 통상산업부 차관, 제 4대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일했다. 공직 생활을 하던 중 1985년에는 미국뉴욕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기도 한 학구파이자 엘리트 출신 경제관료이다. 강 장관이 차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맞게 된 IMF 사태 이후,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IMF 환란에 대한 책임론으로 당시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필수 코스로 여겨졌던 최소한의 공기업 감사자리 하나도 얻지 못하는 불운의 시기를 거친다.

그 후 1년만인 1999년 4월에 얻은 자리가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자리이다. 이후 메리츠 증권 사외이사 2004년 한나라당의 17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정치권 입문 얘기가 오가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한결 같이 자신의 주 전공인 경제관료 쪽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을 맡고 있을 당시인 2005년 8월에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 1분과위원회 간사를 맡은 후 곧바로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에 오르게 된다. 이후 장관직에서 물러났지만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수장에 오른 후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특보로 발탁됐다. 여기까지가 강 장관의 이력의 큰 줄거리이다.

강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강 장관이 82년 소망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월로 치자면 무려 27년간의 인연이다. 금융과 조세 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가 경제 일선에서 다시 일하고자 하는 꿈을 10년만에 이 대통령은 이루어주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경제부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는 동안 쌓아온 그의 실력 또한 좌우했다. 이론적인 면에서도 그는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례로 당시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고 국세청까지 난색을 표명했던 부가가치세라는 조세 항목을 처음으로 접목한 것도 강만수 장관이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의 슬로건이었던 ‘747’(연평균 경제성장률 7% 달성,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고 세계 7대 강국에 진입)도 강 장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 당시 현직에서 은퇴한 10년간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제기됐다.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말도 여기서 생겨났으며 소망교회 인맥의 중용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 또한 감내해야 했다.


IMF 책임론 불구, 다방면

경험 강점


강만수 전 장관의 퇴진론이 거셀 무렵 그의 경제 정책을 두고 경제계에서는 과거 10년 전과 변함이 없다고 평가했다. 시장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족하고 고환율 정책으로 무역수지 개선을 통한 기업수익 증대를 통한 투자활성화, 그에 수반되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시나리오가 예전과 같다는 것이고 단순한 논리로 아직도 접근하고 있다고 혹평이 이어졌다.

그가 국내 경제팀의 수장으로 오른 이후 가파르게 오른 환율은 물가 상승을 초래했고 대표적인 수입원자재인 기름값은 한때 휘발유 기준으로 2000원을 돌파하는 국면에까지 이르게 되기도 했다. 물론 강 장관의 주장대로 수출중심의 기업들은 혜택을 본 측면도 있지만 철강재, 원유 등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서민들 또한 물가 상승으로 고통을 당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강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히 두텁다. 그것은 성장위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추진할 수 있는 적합한 인사라는 이 대통령의 생각과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혹자는 IMF 시절 강만수 장관의 책임론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동안 경제계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강만수 전 장관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진짜 힘을 보여주기를 경제계를 비롯해 국민들은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강인범 기자 neoki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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