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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인선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었던 자유선진당 ‘심대평 카드’가 무산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9.3개각을 통해 중도좌파로 불리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정 내정자는 서울시장 뿐만 아니라 야권의 대권후보로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은 인물이라 민주당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중도실용과 통합을 집권 2기의 모토로 내걸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정 내정자 카드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실리를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인 상태다. 더불어 정 내정자 카드가 차기 대권후보로 독주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 역할과 더불어 미디어법 투쟁과 4대강 저지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야당의 예봉을 꺾기 위한 방편책이란 시선도 존재한다. 친박 진영에서는 정 내정자 총리 인선을 두고 ‘다른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친박계, 정운찬 내정자 대선후보 급부상에 반발기류

평소 이명박 정권과 정책 괴리 좁히는 게 최대 과제


충청권 출신으로 ‘친야’ 인사로 평가되었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집권 2기 MB 내각의 총리로 임명됐다. 충청권 민심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정 전 총장 카드는 차선의 선택일수 있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충청권 진출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는 효과도 예상된다.

정 내정자는 “대운하를 만들 돈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더 주는 게 낫다”며 MB정부의 핵심 공약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왔다. 교육정책, 감세 정책을 비롯 금융규제 완화 등에 대해서도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해왔던 인물이라 이번 인사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불어 정 내정자는 2007년, 당시 범여권 대권후보로 물망에 오르던 인물이며 경제학자로 서울대 총장을 역임하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식인층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었던 인물이다.

이번 총리 인선과정을 두고 여권 핵심 관계자는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도 총리 후보로 유력했으나 본인이 ‘새만금에 집중하겠다’며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불리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통해 고사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발표 하루 전인 9월 2일에 정 전 총장으로 확정되었으며 정 전 총장 카드가 MB정부의 ‘고육직책’이 될지 최선의 카드일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번 인선 배경에 대해 “그간 경제비평가로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건설적 대안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경험이 대통령을 보좌해 행정각부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을 내실 있게 추진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총리 인선과 더불어 진보진영에서는 ‘변절자’라는 원색적인 비판도 나오고 있으며 정 내정자는 여론으로부터 야권의 잠룡후보에서 여권의 차기 잠룡후보군으로 탈바꿈하며 급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청문회도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야권진영이 자신들의 대권후보군 중에 한사람이었던 인물에게 어떤 흠결을 찾아내 맹공을 가할지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근혜 기싸움 본격화


정운찬 내정자 카드로 여권내에 정치적 파장도 예상되고 있다. 여권내 친이 진영에서는 ‘정운찬 카드’가 통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인선이었다며 자평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의 쇄신을 요구했던 당내 쇄신파 역시 긍정적이다. 쇄신특위 위원장이었던 원희룡 의원은 “지역적, 이념적으로 아우르는 잘 된 국민통합 인사”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친박진영에서는 정운찬 카드의 의도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청와대와 박근혜 전 대표간의 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친이 진영에서는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정몽준 최고위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자 새로운 대권후보를 육성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더불어 이재오 전 최고의원의 복귀도 여론이 숙성된다면 곧바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운찬’이라는 또 다른 돌발 변수가 나타난 셈이다.

여전히 친이 친박 계파가 양분하고 있는 한나라당 정치 지형상 어떻게든 내년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대선 잠룡군들이 움직일 것을 감안한다면 정운찬 내정자는 향후 그의 역할과 청와대의 물밑 지원이 있다면 대권 후보로 성장가능성도 충분한 모습이다.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조기행보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총리직 수락 꿈에도 몰랐다”


야권에서도 내부적으로 이번 인선에 대해 ‘허를 찔렸다. 정 전 총장이 총리직을 수락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 내정자의 향후 역할에 대해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부정책과 노선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해 왔던 정 내정자가 자칫 무색무취의 국무총리로 전략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큰 인물로 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쇼맨쉽과 리더십이 필요한데, 학자 출신인 정 내정자가 정치권의 파상공세를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국정전반을 총괄하는 대통령 다음가는 자리지만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현 정부상황에서는 국무총리의 활동반경과 역할이 작아 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의 스타일이 필요한 부분을 직접 챙기는 편이라 국무조정 능력부분에서 정 내정자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가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이해찬 총리처럼 실세형 총리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이 MB와 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그의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는 강화될 수 있다는 ‘역설’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17대 대선에서 당시 범여권의 대선후보로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정치세력의 부재와 단기간에 바람몰이를 하기에는 아직 ‘급이 약하다’는 지적을 본인스스로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대선후보 경쟁을 포기했다. 정 내정자 개인으로서는 총리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향후 인지도 상승은 물론 주류진영의 대권주자로 발돋음 할 수 있는 호기를 잡은 셈이다.


“다른 의도 있는 것 아니냐”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에서 여권의 대권후보군으로 급부상한 정운찬 내정자에 대해 친박계 의원들은 공식적으로 밝히기는 그렇지만 청와대 인선에 떨떠름하다는 반응이다. ‘박근혜 힘빼기’가 아니냐는 관측도 일고 있다.

PK 지역의 한 친박계 의원은 “정운찬 내정자가 원래 대권 후보군이었고 그가 다음 대선에서 출마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부분은 정치권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지 청와대가 대권과 관련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잘못됐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박계 의원 역시 “총리 한다고 다 대권 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한승수 총리의 임명당시에는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물론 한 명의 후보군 보다 여러 좋은 인재들이 여권의 후보로 나오는 것은 바람직 하지만 홍보수석에서 그런(대권후보)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박 전 대표를 의식한 인사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친박진영에서는 이번 인사와 관련 유럽순방에서 돌아온 박 전 대표가 성격상 ‘구체적인 언급은 없을 것이다’는게 중론이며 향후 관망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분위기다.

강인범 기자 neoki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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