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누군가 총리 되면 당은 무방비 분열 불가피" 우려


 

▲ 정치권은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도 "탈당" "조기사임" 등 쇼킹한 정치행보를 계속 진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당에서조차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 속내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노 대통령의 연정론은 뜬금 없이 시작해서 모호한 상태로 지속됐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저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라는 의혹이 두 달 이상 정치권의 최대 화제였다.

하지만 서서히 노 대통령의 ‘연정 로드맵’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식 동거정부의 모습을 참고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내각제로 가보겠다는 심산인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통령의 연정론과 탈당이 내년 지방선거 후 한나라당을 분열시킬 핵폭탄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도 ‘깜짝 정치’를 계속 펼칠 것같다.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등장시켰던 각종 ‘폭탄발언’ 이상의 것들도 줄줄이 준비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미 ‘2선 후퇴, 임기 단축’ 발언까지 한 터라 어떤 쇼킹한 ‘정치술’을 부리더라도 별로 놀랄 것 없어 보이지만, ▲탈당 ▲거국내각구성 ▲조기사임 등 노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대한 ‘예상치’들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정치는 초유의 충격 속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지난 8월 31일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연정을 강조하며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노무현 시대를 빨리 마감하고 싶다” “연정을 안 받으면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연정 거부하는 정치인은 성공하지 못할 것” 등의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던 모습 때문에, ‘무시’로 일관하려던 정치권이 신경을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야 정치권은 노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깔아놓은 ‘연정 멍석’ 위에서 향후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할지 고민 중이다.

여권에서조차 ‘주군’을 따라가야 할지, 이참에 주군을 버리고 살 길을 찾아야 나서야 할지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의 ‘연정 로드맵’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있고, 정치권은 이에 따른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까지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라면, 한나라당은 총리 선출권과 각료 구성권을 가지면서 정권을 이양 받는다. 이로써 일종의 ‘동거정부’가 구성된다.

한나라당에서 총리 장관 자리를 다 차지하더라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협조를 하는 사실상의 거국내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에 맞는 조건의 개헌이 이뤄지고, 아울러 선거법 등 제반 여건들도 크게 변한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우리나라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꿔보겠다는 노 대통령의 계획이다.

개헌 논의가 진행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개헌, 특히 내각제개헌 논의는 늘 있어왔다. 5·6공은 물론이고 3당 합당 때도 내각제개헌이 연결 고리였다. DJP(김대중·김종필)연합 때도 내각제는 최고의 화두였다.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늘 여권 쪽에서 개헌에 반대했고, 결국 말뿐인 논의로 묻혀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과거와 다르다.

여권, 그것도 대통령이 내각제를 먼저 꺼내들고 나와서 재촉하며 협박까지 하는 형국이다.

지난해말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이었던 민병두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2006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바로 분권형 개헌논의가 시작될 것이고, 여야 정치인이 모두 지지하고 있어서 이번에는 개헌이 될 것이다”며 개헌 국민투표 실시 시기를 2007년 2~3월로 전망했다.

올 초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도 본지 인터뷰에서 “개헌논의는 내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진행돼 대선이 있는 2007년 초에는 국민투표까지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 이미 서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인사는 이번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했다. 그의 확신처럼 내각제개헌은 앞으로 최고의 정치쟁점으로 부각할 공산이 클 뿐 아니라 내각제를 중심으로 큰 틀의 정개개편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내각제를 실현시키려면 일정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여야가 개헌협상에 들어가야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늦어도 2007년 초 국민투표까지 끝내야 ‘노무현 식’의 대선을 치를 수가 있다.

노 대통령은 “개헌의 성공이 보장된다면 대통령직을 관두겠다”면서 대통령직과 개헌을 맞바꿀 수도 있다는 선언을 한 상태다.

자신 뿐 아니라 17대 국회도 해산하면서 개헌에 동참해야 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참모진들에게 내각제 개헌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또 선진국들이 ‘연정’을 어떻게 진행했는지의 사례까지 덧붙여 보고하라고 했다.

얼마 뒤 ‘연정 및 내각제’에 대한 보고서가 노 대통령에게 접수됐다.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의 정치 일선 전면 등장을 촉구하는 ‘정치지형변화 국정운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도 노 대통령 손에 주어졌다. 노 대통령의 연정이 내각제를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것은 ‘6월 보고서들’의 내용에 기인하는 바 크다.

그리고 난 뒤, 노 대통령은 ‘여권 11인 회의’ 등을 통해 연정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연정 국면’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또 ‘정치지형변화와 국정운영’이 권유하는 대로 ▲대국민 대통령 직접 정치 ▲야당 대표와의 직접 담판 ▲유럽식의 정당 간 정치연합 형성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것이란 교훈 ▲선거제도 등 정치관계법 대안 제시 등의 실천을 행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고질적인 지역구도와 정치문화를 바꾸기 위해 내각제를 택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대권구도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 대통령제로는 정치지형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점을 측근들에게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당초 내각제를 염두에 두면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현실적으로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내각제 도입만큼 효과적인 방안도 드물다는 인식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분석대로라면 노 대통령의 연정론은 치밀한 계산 속에서 출발한 것이고 정치권이 이 같은 ‘풍파’를 겪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노 대통령은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연정론에 대해 지난 6월 경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정 장관 측 관계자는 “대통령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있고 있는데, 아무래도 정 장관이 여권 내 1순위 차기감이라는 인식 때문에 미리 둘이서 긴밀한 상의를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차기 유력 대권후보인 정 장관과 교감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내각제로 가다보면 선거구제 개편논의도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 현재 여권서 나오고 있는 안은 ▲중대선거구제 ▲독일식 명부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대략 세 가지. 현재로서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분위기 몰이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선거구제 개편논의에서는 한나라당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야당의 반발은 연정구상 전체에 대한 반대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를 덮을 수 있는 카드로 노 대통령은 ‘탈당’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에서는 탈당 카드가 등장할 시점과 관련 “거국내각 구성을 위한 강공 드라이브가 시작될 때 쯤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연정 제안이 야권에 ‘씨도 안 먹히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일단 탈당부터 해놓고 거국내각에 참여할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한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아무튼 대통령의 탈당은 극적인 상황에 이뤄질 것이라는 게 현재까지로선 중론이다.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청와대 핵심 참모진들은 대통령의 탈당카드를 한나라당을 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다”며 탈당 카드에 대한 여권 일각의 관점을 전했다.

이 소식통은 “여권 지도부에서는 대통령 탈당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구상이 벌써 다 돼 있다”면서 “연정론을 놓고 지금도 한나라당에서 찬성 반대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대통령이 탈당까지 하게 되면 그 분열은 특히 더 심해질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사람들 중에 여권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생길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한 핵심당직 관계자는 “대연정 판국이 계속 지속되면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대권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사람 중에 지지도가 낮은 사람 누군가가 갑자기 총리로 가면서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갈 경우, 또 이 사람이 자기 사람들을 각료로 두면서 사실상 권력을 행사할 때 한나라당은 무방비 상태로 분열될 수밖에 없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우려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같은 우려는 “한나라당이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노림수와 일맥상통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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