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크숍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당 지도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 때문에 둘로 쪼개질 판이다. 이 같은 분열 양상은 최근 경남 통영에서 가진 워크숍과 청와대 만찬 이후 본격화하고 있다. 당에서는 ‘의원들의 다양한 의견들과 쌓였던 불만 등이 표출됐다’ 정도로 현상을 정리하고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이 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우선 대통령의 연정론 자체가 싫다는 쪽과 대통령을 이해하자는 쪽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점이 심상찮다. 의원들로부터 “대통령이 당을 버렸다”는 얘기가 등장하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그렇다면 우리가 대통령을 버릴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당 지도부가 의원들의 ‘입 단속’을 하고 나섰지만, 단속의 차원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이 내각제 개헌을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당에서는 불만의 차원을 넘어 정치적 노선에 따른 분열 조짐마저 일고 있다. 대통령 개인의 생각으로 내각제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데 대한 반작용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공식적인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과 불만 등을 밝히는 의원들이 있긴 하지만, 이보다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이야기들과 당 주변 인사들의 고민에 주목하면 ‘단순한 불만’ 이상의 것들이 감지된다.

가장 큰 문제는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연정론 자체를 싫어하는 의원들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아직 연정론에 공식적인 반기를 들며 나서는 의원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당내에서 찬성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문희상 당의장, 정세균 원내대표, 유시민 상임중앙위원 등 몇몇 당 지도부와 정청래, 이화영, 서갑원, 이광재 의원 등 친노직계와 일부 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찬성파다.

현재까지 언론이 보는 앞에서 연정론에 대한 불만이나 옹호의 입장을 피력한 이들을 따져봐야 30명 안팎이다.

하지만 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있는 100여명의 대다수 의원들은 대부분 연정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정치권은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은 주변인들이나 동료 의원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만, 주로 연정에 대해 반대하거나 걱정하는 분위기 일색으로 전해진다.

‘연정, 찬성-반대’ 양쪽으로 갈리고 있는 두 편들에 대한 주변 여론이나 정국 변화, 양측 주도 세력들의 각종 설득 등이 이들 100여명의 정치 진로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년 전 민주당을 반으로 쪼개더니 이번엔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 마저 반으로 쪼갤 심산이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분열병이 또 도졌나”라는 인신 공격성 불만도 들린다.

한 여권 인사의 표현처럼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불씨가 갑자기 등장해 열린우리당을 태워 삼킬 태세”가 현실로 접근하고 있는 분위기다.

과거처럼 ‘신-구주류’ 혹은 ‘실용-개혁’이라는 구분법보다는 ‘연정 찬성-반대파’로 당이 분열하고 있는 데 대한 정치적 거취 문제를 고민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기로에 서서 결단을 촉구 받고 있다”면서 당 의원들의 고민을 전했다.

열린우리당의 나뉨 현상은 지난 워크숍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참석했던 이들에 따르면, 워크숍에서 나온 이야기들 가운데 80% 이상은 연정론에 대한 비판론들이었다. 경제문제 등 현안은 뒷전이었다.

워크숍에 참석한 대부분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당의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대연정론을 추진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10명 가운데 1명 정도가 연정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하는 의원이 있을 정도였다.

호남권 의원들의 불만이 아무래도 강하게 표출됐다. 불만의 기본적인 논조는 대통령이 당의 의견과 민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연정론을 추진한다는 점이었다. “청와대에서 끼리끼리 다 결정해놓고 당을 들러리로 세운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최규성 의원은 “호남에서는 연정론이 씨도 안 먹히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최 의원은 “(호남에서) 지지도가 3%밖에 안 되는 한나라당과 어떻게 연정을 하겠나. 영남의 지역주의와 호남의 지역주의는 다르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김동철 의원은 “당내 컨센서스가 있어야 한다”며 연정론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송영길 의원의 발언이 특히 눈에 띄었다. 송 의원은 연정론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당 지도부를 수세로 몰아붙였다.

송 의원은 “지역주의 극복이 중요한 과제이지만 당이 지역주의로만 망가졌느냐. 당의 어려움은 정책 실패, 민생경제 실패에서 온 것이다. 노 대통령과 지도부는 보다 민생 현장에 나서라”며 노 대통령과 정부를 정면으로 때렸다. 또 “대통령이 말 한 마디 하면 그대로 따라가는가. 이게 무슨 당이냐. 3김 시대도 아니고, 우리당이 대통령의 사당은 아니지 않은가”라고도 했다.

우원식 의원은 “한나라당과의 연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김영춘 의원도 연정론을 비난했다. 김 의원은 “대연정은 사회통합에도, 정치통합에도 맞지 않다”며 “껍데기만의 통합이고, 결국 (지역주의를) 원점으로 되돌릴 것이다”고 말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대통령의 결단을 껍데기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강기정 의원은 “대통령이 너무 앞서 나간다”며 “지역세력과 개혁세력의 승리를 놓고 (대통령이) 선도투쟁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의원들의 거친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문학진 의원은 “당이 개털이냐”며 강한 불만을 드러낸 뒤, “연정론은 당의 진로와 관련된 것인데, 대통령이 혼자 문제제기하고 혼자 결론까지 내려 떨어뜨리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했다.

정덕구 의원은 “대통령이 당을 못 믿는 것 같다”며 대통령의 신뢰감을 정면으로 문제삼았다. ‘믿을 만한 대통령이 못돼서 따라가기 힘들다’는 투였다.

이밖에 분임토의 등에서는 거친 발언들이 더 많이 나왔다. 특히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에서는 “당과 대통령이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대통령 자리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자리인지,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모든 국민들은 경제 쪽으로 정부가 전념하기를 바라는 데 저렇게 정치 쪽으로만 가고 있으니 지지도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노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달라고 말할 수 있겠나” ▲“지역구도 해소하면 모든 게 다 된다는 발상인 것 같은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등의 비판 얘기들이 오갔다.

“무슨 꿍꿍이로 연정론을 저토록 밀어붙이는 지 모르겠다”며 연정론의 속내에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도 있었다.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아무래도 탈당을 전제로 한 것 같다” ▲“결국 내각제를 염두에 둔 것 같은데, 대통령 의도대로라면 의석을 왕창 차지하겠다는 것 아니냐. 국민들이 박수칠 리가 있겠냐” ▲“일각에서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한 것 같다는 의혹도 있다”는 등의 불만 일색들이었다.

의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연정론에 대한 비판조로 흐르자 문 의장 등 지도부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자”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의원들은 잠깐 입만 다물 뿐, 수심과 불만에 가득찬 표정들은 계속 이어졌다. 당 지도력을 문제삼는 발언들도 마구 쏟아졌다. “당이 청와대에 계속 끌려가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주를 이뤘다.

“정치한 뒤 이만큼 곤욕스러운 위치에 처해본 적이 없다”는 문 의장의 표현대로 지도부는 청와대와 당 사이에서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입장에 서야한다며 대통령 감싸기에 안간힘을 쏟는 지도부는 친노계열에 속하는 의원들에게도 욕을 먹었다.

정청래 의원은 “대통령이 10번 넘게 연정 얘기를 했는데, 당은 두 달 넘게 시간만 허비했다. 대통령이 볼을 드리블하면서 패스할 곳을 찾는데 당이 받을 자세가 안 돼 있으니까 혼자 드리블하다 결국 국민들에게 직접 패스한 것 아니냐. 당이 졸다가 시기를 놓친 상황”이라고 했다.

유시민, 이목희, 김성곤, 윤호중 의원 정도가 연정론의 참뜻을 이해하자며 대통령을 ‘엄호’했다. 특히 유시민 의원은 “국회본회의 주제를 보면 83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도 정치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질이다. 대통령이 왜 저리 난리를 치냐면 이걸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거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대통령의 지역구도 타파라는 진정성을 이해 해달라”며 “소모적인 싸움만 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의원들을 달랬지만 의원들로서는 한 두 번도 아닌 식상한 달래기 멘트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30일 청와대 만찬 역시 청와대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어서 의원들은 불만이 가중된 채 청와대로 자리에 모였다. 한 의원은 “워크숍에서 현안토의 시간을 1시간 정도로 하기로 했는데 반으로 뚝 짤라 먹었고 거기다 비공개로 진행했다”면서 “대통령 간담회를 앞두고 의원들을 달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을 통해 “2선 후퇴 및 임기단축”까지 언급하면서 연정론에 대한 집념을 보이자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는 “아예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대통령과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당은 워크숍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고 경제대책과 양극화 해소에 전념하자며 연정논의 중단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연정론의 강도를 더 키웠고, ‘연정 국면’을 계속 몰고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청와대 만찬 후 더욱 큰 충격에 빠졌고, 아예 입을 닫는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과 뭔가가 통하지 않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임종인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한나라당과 이념과 정책이 다른데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연정을 하는 것에 대해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연정 제안 이후 당 분열에 지지율 하락까지 겪고 있는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10월 재보선에서 또다시 참패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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