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이주노동자 실태


 

▲ 불황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의 대량 정리해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들 중 상당수는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위험을 무릎쓰고 불법체류를 선택하는 등 제도적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관련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한 외국인 곡용센터를 방문한 외국인이 일자리를 상담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두 달만에 해고되자 유서 쓰고 스스로 목숨 끊어
“돌아가면 빚쟁이” 위험 무릎 쓰고 불법체류 선택

이주노동자들의 주된 일터인 영세 제조업체들이 경기불황 속에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이들 업체에서 밀려난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출국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들 이주노동자들에겐 실직이 곧 강제추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들의 실직 후 취업은 그 누구보다도 더욱 절박하다.

하지만 국내 관련법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위험을 무릎 쓰고 불법 체류를 선택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직으로 인한 안타까운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살펴봤다.

지난 3월 11일 밤 9시경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한 공장 기숙사. 이곳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응우엥 씨(32)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멀리 있어 더 생각나는 할아버지와 부모님. 인생에는 시련이 많이 있다는데 저는 극복할 수가 없었다”는 짧은 유서만을 남긴 타국의 청년은 재입국 허가를 받아 다시 한국 땅을 밟은 지 52일 만에 생을 마감했다.

이주노동자 해고 1순위

지난 2006년 한국에 온 응우엥은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다 3년의 취업기간이 지나 본국에 돌아갔다가 지난 1월 재입국했다. 예전에 일했던 자동차 부품공장에 다시 취업했지만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두 달여 만에 해고됐고 고용지원센터를 전전하며 새 일터를 찾아야 했다. 숨진 그의 겉옷 안주머니에서 발견된 고용지원센터에서 내준 20여개 업체의 구인 소개장. 취업을 하고자 하는 그의 절박한 심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등록증과 주변 지인들을 통해 빌려 마련한 생활비를 소매치기 당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그의 동료들은 “고향에 있는 동생 부부와 가족들의 생계를 모두 응우엥이 부담하고 있었다”며 “그 때문인지 직장을 잃고 나서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응우엥의 시신은 같은 달 17일 오후 베트남 고향으로 실려갔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해고를 당하거나 해고 위기에 처하는 등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행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주노동자가 2개월 내에 재취업을 하지 못하면 불법 체류자로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세 차례 이상 사업장을 옮길 경우에도 해당이 된다.

하지만 직장을 잃은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경기불황 탓에 2개월 내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경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영세 제조업체들이 이주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내보내는 형편인데 경기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들 이주노동자는 원치 않는 고향 길에 오르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재취업이 안 돼 출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해 10월 171명, 11월 213명, 12월 299명으로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출국하는 이들 못지 않게 상당수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쩐쑤언 씨(31). 그는 지난달 초 부산 사상공단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일거리가 없으니 그만 두라”는 업체 사장의 말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재취업을 위해 고용지원센터를 찾았지만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급기야 그는 직접 일자리를 구하기로 했다. 한 달 전 해고돼 함께 살고 있는 베트남 동료 우디안 씨(26)와 사상공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150여 곳의 제조업체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실패했다. 경기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었던 것.

그는 “한국에 올 때 입국 비용으로 1,500만원을 냈는데 아직 1,000만원도 갚지 못해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가면 빚만 지게 된다”면서 “그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베트남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관련법 개정돼야”

이에 외국인 근로자를 지원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가 안정적으로 체류하며 취업활동을 하도록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는 등 차별없는 고용유지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내·외국인을 가릴 것 없이 구인난이 심한 요즈음에는 2개월의 구직기간 제한 규정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엄격한 규정으로 인해 오히려 불법 체류자만 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자신의 잘못 없이 일자리를 잃은 경우 강제출국을 유예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 역시 이들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안경덕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장은 “이미 국내에 들어왔다가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 노동자의 구직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불법체류를 선택한 이주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신분보장도 받을 수 없고 이로 인해 갖가지 인권침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등의 문제는 또 다른 과제로 남아있다.

이철현 기자
amaranth28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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