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에이즈 파문 충격에 빠진 제천


 

보건소 “이미 모든 직원들 업무마비” 문의전화 빗발쳐
불안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 잇따라 지역 유흥가 떠나

제천 에이즈 택시기사 사건으로 인한 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건이 발생한 충북 제천시는 이번 파문으로 적지 않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 지난 3월 13일 검거된 택시기사 전모 씨(25)의 충격적인 에이즈 전파매개 행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경찰은 전 씨와 성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쫓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이러한 추적은 피해자들 인권침해 논란, 이들 피해자의 자발적인 검진유도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인해 곧 종결되기에 이르고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다. 이렇듯 피해자 감염여부 미확인은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요소가 됐고 급기야 전국으로 확산됐다.

경찰수사와 함께 보건당국의 허술한 관리시스템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어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은 불문가지다. 에이즈 파문으로 공포에 휩싸인 제천. 3월 20일 현재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그곳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에이즈 공포가 확산된 충북 제천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제천시 보건소는 사건이 알려진 이후 이번 파문으로 인해 에이즈 검진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보건소는 전 씨가 살고 있던 청전동에 위치, 이번 파문으로 때아닌 전화폭주에 시달리고 있었다.

택시기사 “쉬는 게 낫다”

이곳 보건소의 한 관계자는 “이미 모든 직원들의 업무가 마비가 될 정도로 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며 “대부분 감염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문의가 많은 가운데 일부는 환자관리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항의하는 전화도 오고 있어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또 “평소에는 이러한 검사 문의가 가뭄에 콩 나는 격으로 있었지만 이번 사건이 알려지고 난 후 다음날인 주말에만 이 같은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이 무려 60명을 넘겼다”며 “개인적으로도 사건을 접한 후 어느 정도 파장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보건소는 아직까지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은 없다고 밝힌 가운데 최종결과는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에이즈 감염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소 관계자들은 일단 음성판정으로 인해 한숨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또 다시 송수화기를 붙잡으며 씨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의 파문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보고 있는 택시기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제천역 인근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사건이 발생한 뒤 야간에 택시를 이용하던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당장 장사가 잘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빨리 안정을 되찾고 잠잠해져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답답할 뿐이다”고 심경을 밝혔다.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만난 또 다른 택시기사는 자포자기 상태. “이번 사건으로 인해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밤에는 거의 없고 낮에도 예전보다 확 줄어들어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어 장사를 못할 지경이다”고 말한 이 택시기사는 “이대로 지속된다면 차라리 집에서 쉬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하필 그런 짓을 한 놈이 택시기사였다니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며 “택시업계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편, 제천시 일대 유흥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상당수 유흥업소들이 문을 굳게 닫은 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제천역 인근에서 가요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사건이 알려진 이후 많은 업소들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며 “대부분 영업을 중단하고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길 바라며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한 뒤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가요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업주도 “에이즈 공포에 휩싸인 업소 여종업원들 상당수가 이곳에서 생활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제천 인근의 강원도 원주나 경북 영주 등으로 많이 빠져나갔다”고 전해 이 지역 여종업원들의 제천 엑소더스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이번 파문으로 인한 공포가 자칫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천시 명동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업소를 옮기는 주기가 짧다”며 “6년 동안 범행을 저질렀다면 이미 범인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은 인근 도시나 경기, 서울 등지로 빠져나갔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제천과 인접한 지역은 이미 이번 파문으로 인해 술렁이고 있다. 제천에서 가장 인접한 지역인 강원 원주와 영월은 중앙고속도로와 38번 국도 확장 개통 후 차량으로 불과 20여분 거리로 유동인구가 많음과 동시에 동일한 생활권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때문에 인접지역 주민들 역시 제천지역 주민들 못지 않게 크게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월읍 하송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그 사건이 발생할 때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에이즈에 감염된 택시기사가 6년 동안 저질렀다는 점에서 혹시나 감염된 사람이 이곳으로 유입됐으면 이곳도 안전지대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건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감염여부까지 모든 것을 다 파헤쳐 해결할 것처럼 하더니 겨우 성관계를 가진 몇 명의 여성에 대해서만 조사를 하고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는 등의 변명으로 수사를 종결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안심할 수 있겠느냐”고 경찰수사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인접지역도 불안

또 다른 한 지역주민은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많아 자주 가는 곳인데 이런 사건이 발생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는 주변에서 당분간 가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조금 당황했지만 지금은 거기 가는 것 자체가 찜찜하다”고 털어놨다.

지역 유흥업소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원주시 학성동에 위치한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지금 최악의 경기불황으로 어렵게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나마 있던 손님들 발길마저 끊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며 “특히 택시기사가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점은 여기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관할 경찰서는 뚜렷한 움직임이 없는 상황. 원주경찰서 관계자는 “아직까지 제천경찰서로부터 수사협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교통망과 인접한 지역인 만큼 이에 대한 수사협조 요청이 있을 시 적극 협조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인접 지역까지 상황이 에이즈 공포가 급속히 확산되자 사건 발생지역인 제천시, 원주시는 부랴부랴 에이즈 공포 진화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제천시청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라는 불치병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다”며 “에이즈 보균자와 성관계를 가졌어도 감염될 확률은 1% 미만이며 또 의학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당뇨, 고혈압처럼 만성적 질환으로 꾸준한 치료와 함께 건강관리만 해준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에 이를 집중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철현 기자
amaranth2841@naver.com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