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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못치른 그곳엔 깃발만 펄럭용산 사태 ‘그 후’ 르포
  • 이철현
  • 승인 2009.03.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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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몸싸움 끝에 세입자 5∼6명 현장에서 연행

전경에 둘러싸인 차량에 과태료, 범칙금까지 부과

경찰과 철거민 등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전국을 강타했던 용산 철거민 사태. 그 끝이 보이질 않고 있다. 사태의 시발점은 정부의 재개발 방침으로 인한 지역 상가 철거와 함께 이를 보상하는 문제에서 세입자들과 적지 않은 갈등과 마찰이 있었는데 이 같은 갈등은 곧 지난 1월 망루점거 농성으로 표출되기에 이른다.

이에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동원, 이들의 농성을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과 함께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낳으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것이다. 사태 발생 후 철거민과 전철련 관계자 구속,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 강호순 사건을 적극 홍보해 용산 사태로 쏠려있는 국민들의 관심사를 돌릴 것을 지시한 청와대 이메일 공개 파문 등 그동안 이와 관련된 여파가 끊임없이 지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도 이들 세입자는 경찰과 첨예하게 대립하며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고 있다. 어느덧 40일을 훌쩍 넘긴 용산 사태. 이들 세입자의 몸부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여러분, 저희는 용산 4구역 상가 세입자들입니다. 지금 경찰은 저희들이 일하고 있는 상가를 가로막으며 밖으로 내쫓고 있습니다. 당연히 저희들의 일터가 있는 저 길을 가고자 하는 것뿐인데 경찰들은 이렇게 도로 한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

지난 3월 3일 오후 2시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 위치한 국제빌딩. 하얀색 승합차에 장착된 확성기에서 나오는 고음은 현장을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의 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이미 건물 앞의 도로 한 차선은 10여대의 차량이 정차돼 있는 가운데 차량주변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어 다른 차량들이 지나갈 수 없는 상황. 심각한 교통체증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건물 왼쪽 길은 전경버스를 가로 놓여 막아 놓았고 주위는 많은 경찰들이 세입자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며 입구를 막았다. 반면 전경들로 둘러싸인 차량에 탑승했던 세입자들은 문을 열고 나와 자신들의 일터가 있는 상가로 차를 몰고 가겠다며 경찰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모습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하나 쉽게 물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모습은 30분 후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건물 1층에 숨진 5명의 빈소가 마련된 곳 주변에 있던 세입자들과 차량에 있던 세입자들이 나와 건물 왼쪽에 있는 통로로 갈 수 있게 해달라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거친 욕설과 함께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 세입자들과 경찰은 바로 옆 도로의 이미 막혀있는 차선을 넘어 옆 차선까지 넘어오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신호등은 제 기능을 상실했고 많은 시민들과 이곳을 지나가는 차량들이 불편을 감수했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 5∼6명이 그 자리에서 연행됐고 이를 지켜보던 일부 세입자 및 관계자들이 경찰의 연행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바닥에 쓰러진 한 여성은 그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119 구급차량이 등장, 이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곧바로 차량으로 옮겨 후송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관계자는 “(세입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만을 주장하다 이에 격분한 나머지 도로까지 나와 몸싸움을 하게 됐다”며 “연행된 사람들은 도로를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한 만큼 수사를 한 뒤 관련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항의하고 있던 세입자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한 세입자는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여기에 일하러 온 것이다. 지금도 저기(경찰이 가로막은 국제빌딩 왼쪽 길에 위치한 상가)에는 상가 문을 열어놓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철거된다고 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가 주인들이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당장 먹고 살아야하지 않느냐. 여기 떠나면 갈 곳이 없다”고 항변했다.

혼란 속 긴장감 여전

그 사이 도로 한 차선을 차지하고 있던 차량 중 앞에 있던 차량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전경들이 차량을 둘러싸며 다시 한 번 이를 저지했다. 잠시 후 교통경찰까지 투입, 이들 차량에 전부 주·정차 위반 과태료 문구를 붙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며 범칙금을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앞 쪽 차량에서 한 남성이 나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것이냐”고 큰 소리를 쳤다.

“일하러 가겠다고 하는데 진입하지 못하게 도로에서 차량을 막고 있는 것은 집에 가서 쉬라는 것이냐”고 말한 그는 “그동안 여기서 열심히 일하며 세금 내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거리로 내쫓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며 “입이 있으면 대답 좀 해 보라”고 말한 뒤 눈시울을 붉혔다.

오후 5시를 넘기자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던 이 같은 상황은 서서히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했다. 전경들은 전열을 재정비하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고 세입자들 역시 건물 1층에 마련된 빈소와 앞에 마련된 난로에 모여 지속적으로 경찰과 대립하고 있었다. 차량들도 움직임을 멈췄지만 세입자들은 탑승한 채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42일을 맞은 용산 사태는 그렇게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혼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철현 기자 amaranth2841@naver.com



경찰, 초상화설치 저지 해프닝
“돌아가신 분 그림도 못 걸어”

건물 앞 도로를 넘나들며 철거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한창 일어나고 있을 때, 국제빌딩 옆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이며 격한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다. 약 40∼50분간에 걸쳐 지속된 이 같은 몸싸움의 원인은 다름 아닌 이번 사태로 인해 돌아가신 분의 그림이 그려진 현수막 설치.

철거민 측은 이와 중에 숨진 5명이 그려진 현수막을 1층 앞에 세로로 설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4개만 설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남은 한 개의 초상화를 어디에다 설치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 바로 옆에 설치를 하고 있었다.

이에 경찰은 측면에 설치하는 것은 안 된다며 이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거민 측은 이를 무시하며 설치를 강행, 끝내 전경 수 십 명이 달려가 이를 저지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일부 전경들은 “찍지 마라”고 주변 사람들을 밀어내기도 했으며 한 전경은 뒤에서 이 장면을 몰래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저 사람들 찍어”라고 지시, 소형 카메라를 들고 있던 전경이 이들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초상화 설치를 놓고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던 경찰은 철거민 측이 “돌아가신 분의 그림도 못 걸게 하냐”, “한 달 넘게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도 없냐”고 따지자 더 이상 이들의 초상화 설치를 저지하지 않았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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