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이 무서워


 

범인 김씨, 결혼 앞둔 예비신부를 성폭행 뒤 살해
‘키 170cm 보통체격’ 진술 토대로 탐문수사 체포

지난 8월 12일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있었던 20대 여인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범행 2주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자칫 미궁 속에 빠질 뻔한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피해자 김모(28·회사원)씨가 살고 있던 오피스텔 바로 옆방에 사는 이웃사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결과 숨진 김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인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편 서울 서초경찰서는 20대 여성을 성폭행 한 뒤 살해한 혐의로 김모(28·당시 무직)씨를 구속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용의자 김씨는 다니고 있던 광고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번만 해도 6번째 회사로 모두 6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하는 일 없이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늦은 시간이었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던 김씨는 담배 생각도 나고, 바람도 쐴 겸 문밖을 나섰다.
복도로 나온 김씨는 현관문이 잘 잠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자동 잠금 시설로 된 현관문이지만 살짝 닫을 경우엔 가끔 잠기지 않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도 끝에서 두 번째 방에 묵고 있는 김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삐그덕’ 거리는 침대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제의 소리는 김씨 오피스텔 바로 옆실인 복도 제일 끝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정한 시트 가위로 오려가

김씨는 옆실에 살고 있는 아가씨를 2~3번 본 적이 있었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청순한 이미지의 아가씨였다. 바람을 쐬기 위해 나왔던 김씨는 계획을 변경했다. 복도 끝 창문에 기댄 김씨는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옆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편 피해자 김씨의 방엔 김씨와 그녀의 약혼자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초경찰서 강력3팀 이현용 팀장은 “당시 언니와 함께 생활하던 김씨는 언니가 해외로 출장을 가자 약혼자와 약 한 달간 동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약혼자는 숨진 김씨와 시간을 보낸 뒤 매일새벽 4∼5시경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출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팀장은 이어 “복도 창문에 쌓여있는 담배꽁초로 미뤄, 용의자는 매일 숨진 김씨의 오피스텔 앞을 서성거렸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숨진 김씨가 새벽 4시 이후엔 혼자 남아있다는 것을 용의자도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건 당일인 지난 12일 새벽 5시 30분.
담배를 피기 위해 복도로 나온 김씨는 아무생각 없이 숨진 김씨의 오피스텔 문을 열어봤다. 무심코 잡아당긴 손잡이가 쉽게 열렸다. 당시 방안에는 김씨와 김씨의 고등학교 친구인 황모(28·여)씨가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마침 잠에서 깬 황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장한 남자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란 것은 황씨뿐만이 아니었다. 순간 당황한 용의자 김씨는 소리를 지르며 김씨를 깨우려고 하는 황씨의 등을 방안에 있던 흉기로 7차례 찌르고 침대 밖으로 밀쳐냈다.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린 황씨는 실신했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 김씨가 잠에서 깼다.

용의자는 잠에서 깬 김씨를 3차례에 걸쳐 성폭행 했다. 경찰 조사결과 용의자 김씨는 3번 모두 체외 사정을 했고, 한번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피해자를 욕실로 데려가 질 속에 남아있는 정액을 깨끗이 씻기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용의자는 “12월에 결혼한다”며 “시키는 데로 다했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는 피해자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고 목 졸라 살해한 뒤 그대로 달아났다.

이 팀장은 “용의자 김씨는 증거물을 남기지 않기 위해 체외 사정한 시트 부위를 가위로 오리고, 테이프로 음모를 줍는 등 초범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태연하게 행동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유전자 감식결과
DNA 일치

다행히 치명상을 입지 않고 다음날 오전 9시 30분께 깨어난 황씨는 사건 발생 3시간 만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부산에 살고 있던 황씨는 사건 전날 서울로 올라와 김씨를 만났으며 함께 잠들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경찰은 오피스텔에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도난 당한 물건이 없는 점으로 미뤄, 숨진 김씨를 잘 아는 이에 의한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으며, 황씨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 등을 기초로 주변 탐문 수사를 통해 바로 옆방에 사는 김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 팀장은 “숨진 김씨의 몸에서 나온 정액과 용의자의 입에서 채취한 DNA를 대조한 결과 일치했다”며 “현재 김씨는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DNA 대조에서 동일인으로 판명된 결과가 뒤집힐 확률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편 숨진 김씨는 1년 전에 오피스텔로 이사왔으며 용의자도 비슷한 시기에 입주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지영 기자
blog.naver.com/pjy0925



서초경찰서 강력3팀 이현용 팀장 인터뷰
“면식범에 초점두고 수사”


-김씨를 검거하게 된 경위는.
▲숨진 김씨가 살고 있는 서초동 G오피스텔은 현관,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 총 19개의 CCTV가 작동중이며, 디지털 잠금 장치가 돼 있는 현관문 외에는 외부 침입 통로가 없고, 사라진 물건이나 금품이 발견되지 않아 면식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내부 소행으로 확신한 우리는 황씨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를 토대로 의심이 가는 10명에 대해 DNA를 채취한 뒤 숨진 김씨의 몸에서 발견된 정액과 대조했다.

-증거를 모두 인멸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정액은 어디서 채취했나.
▲모두 세 곳에서 용의자 김씨의 정액을 채취할 수 있었다. 아무리 체외 사정했고 몸을 세척했다고 해도 질 안에는 소량의 정액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또 피해자의 몸 속에 용의자의 피가 묻어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침대 시트에서 발견했다. 정액이 묻어있는 시트부위를 가위로 오려갔지만 정액은 시간이 지나면 날라 가는 것이 아니라 침대 속으로 스며들기 마련이다.

-현재 김씨는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는데.
▲범행 당시 피살자와 함께 있다가 범인의 흉기에 찔린 여고동창생 황씨에게 용의자 김씨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준 결과 범인이 맞다는 답변을 들었다. 현재 황씨는 강남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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