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중간관리자 출신으로 에너지 업체 대표로 은퇴한 후 호프집 창업을 통해 자영업자로 변신한 데 이어 정규앨범 발표를 통해 가수로 데뷔한 렉스호프 김광주 사장 이야기를 통해 어떤 것을 느꼈는가? 자신의 이야기가 소개된 컬럼을 뒤늦게 접한 김광주 사장이 필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전하는 것을 필두로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회사원>창업>가수활동: 이것이 창조경제

"그동안 살아왔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늘 노래와 함께하는 인생이었어요." 학창시절 성가대 활동에서 시작해서 노래의 매력에 빠져든 그다. 고교시절, 열심히 모은 용돈 13,000원으로 통기타를 사기 위해 부천에서 영등포까지 자전거로 한달음에 달렸던 때부터 노래는 삶의 일부였다. 대학을 가서도, 직장에 취업해서도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호회 활동을 계속했다. 이때만 해도 노래를 부르는 것은 개인적인 취미활동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만 했다.
그런데 취미활동으로 하던 노래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예사롭지 않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명 가수의 노래 중, 자신의 애창곡을 골라 위문행사나 레크레이션을 햇던 것에 불과했는데,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남달랐다. 원곡을 부른 가수와는 다른 목소리, 다른 창법, 무엇보다 다른 정서에서 오는 감동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가수와는 정서적으로 달랐다. 직장인으로 살며 직장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에서 밀리고, 야근에 지치다가도 회식 때 마시는 술 한 잔으로 호기를 부리기도 하는 일반인과 동일한 일상을 살기 때문이었다. 청중의 그런 반응이 김광주 사장에게 무대를 가리지 않고 노래하는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리고 이제 삶을 돌아보니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해온 일이 ‘노래부르는 일(=가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 살펴보면, 끊임없이 변신하고 융복합을 시도한 창조경제 활동이었다는 것이 김광주 사장 본인의 소회다.

나만의 창조경제는 무엇일까?

"원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전산업무를 하다 중간관리자까지 했었어요. 이후에 대학원에서 경영을 공부하며 에너지업체의 CEO로 근무할 기회도 있었죠. 그런데 생뚱맞게 은퇴 후 호프집을 차렸지만, 그냥 호프집이 아니잖아요? 노래와 공연이라는 문화콘텐츠를 호프집에 접목한 거잖아요. 이런 시도 자체가 융복합 창업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리고 이제는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더불어 관악구를 대표하는 가수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거 억지라고 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지라고 생각하기 이렇게 생각해보자. 오히려 '창조경제'라고 하면 ICT 기술이나 녹색기술, 바이오산업이라는 고부가가치 첨단한업이라는 식의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부가 거시적으로 이끌고자 하는 산업에는 정책지원과 자금지원이 따라가는데, 산업의 특성과 방향보다는 인센티브로 주어지는 부수적인 것들에만 눈을 돌리는 관습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누가 인정해주고 말고, 지원금을 받고 말고를 떠나 나만이 할 수 있고 창출할 수 있는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이 있다

사회인, 직업인의 범주에서 놓고 본다면, IT인력, 경영자, 자영업자, 새롭게 시작하는 가수 경력을 포함하면 연예인의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김광주 사장이지만 실제로 그의 본질은 그런 몇 개의 키워드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앞서 술회한 “노래와 함께하는 인생”이 그를 설명하는 적절한 말이 아닐까 싶다.
김광주 사장과 나눴던 이야기 중에 필자에게 가장 와닿은 말은 다음과 같다.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이 있는데, 나는 그걸 노래로 풀어내는 것 같아요."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은 참 중요하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업종, 직책을 거쳤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스토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스토리 속에서 차이점과 차별성을 도출할 수 있으며, 여기에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지울 수 있는 브랜드 요소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김광주 사장과 같지는 않다. 김광주 사장처럼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고,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것에 강한 담력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따라서 자기자신을 표현하고 나타내보일 수 있는 것은 제약이 따른다.

'어르신 자서전 출간기념회'를 가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관악구에서 실시한 '어르신 자서전 출간기념회'를 들렀다가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위한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관악구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어르신 자서전 편찬 지원사업을 해왔는데,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평범한 어르신들의 삶 속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장면은 물론 관악구의 산 역사가 들어있더라”는 것이었다.
이날 행사는 자서전과 관련자료들을 공개하고 2014년에 출간한 자서전의 저자들이 차례대로 연단에 나와 자서전을 쓰게 된 계기와 자서전을 통해 얻게 된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이기도 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거듭되며 필자의 가슴을 쾅쾅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평범한 내가 자서전을 쓰고 보니 나의 인생이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이었더라",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나의 긴 인생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고, 관심도 시간도 부족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내고 나니 읽어보고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더라"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위대한 사람이다! -"스토리의 힘"

그런 결론을 토대로 저자들의 인생경력을 종합해보면 모두가 저마다의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 중 한 분의 예만 들어보겠다. 최창락 어르신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의 삶을 살고, 대기업에 들어가 근무를 마친 후 은퇴생활을 즐기다가 "나의 뿌리와 삶의 흔적"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연구해 책으로 엮었다.
필자의 스타일로 이분의 삶을 풀어보면 이렇다. 최창락 어르신은 2번의 은퇴를 경험한 사람이다. 군대에서 한 번 은퇴했고, 대기업체에서 은퇴했다. 물론 최창락 어르신이 치열하게 살았던 70~80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이직과 조기퇴직이 많은 요즘의 직장인들에게 이분의 경험은 참고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짚어볼 수 있다. 공학계열의 일을 하던 분이 은퇴 후에는 역사를 다루는 인문학적인 조사를 통해 가족사를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를 짧은 문구로 정리해 본다면, "은퇴가 없는 사나이, 최창락" 이런 식으로 말해볼 수 있겠다.
누구나 글쓰기는 쉽게 도전할 수 있다. 글쓰는 두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말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요즘은 핸드폰이 발달해서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메모하거나 녹음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말재주가 없더라도 인생의 시기별로 주제를 나눠 자신의 기억을 정리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된 스토리를 놓고 다른 이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더 이상 대중 속에 묻혀진 평범한 인생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개인브랜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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