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까지 속인 9년간 행적


 

갈취한 돈 7억원, ‘이중생활’ 위한 품위유지비로 쓰여
“국정원서 필요한 자금, 융통해주면 높은 이자주겠다”

국정원 요원을 사칭한 사기사건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 국정원 비밀정보요원은 과거 ‘안기부’ 시절 한 때 ‘결혼상대 1순위’로 선호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직종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과 권력기반 등을 이용, 친척과 지인을 속여 가며 무려 7억원을 편취한 30대 주부(31)가 지난 6일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주부 A 씨는 자신을 “청와대에 파견된 국정원 자금담당 비밀요원”이라며 사칭해 친지와 지인들을 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담당형사를 통해 사건의 전말과 추적과정에 대해 알아봤다.

‘국정원 자금담당 비밀요원’을 사칭해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9년간 사기행각을 벌이던 30대 주부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청은 지난 6일 친지와 동창생 등에게 “비자금으로 받은 기업어음을 헐값에 할인해주겠다”는 명목으로 7억원을 갈취해온 A 씨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세 가지 수법’

또 경찰은 금융 계좌를 통해 확인된 수억원에 대한 입금자를 상대로 피해여부 등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해 담당형사는 “경찰 생활 30년 만에 가족과 남편까지 완벽하게 속인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검거된 A 씨의 남편 B 씨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며 황당해하고 있다. 결혼 전부터 그녀의 계획이 그만큼 치밀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일정한 직업이 없이 지내던 그녀는 속기사 공무원이 되기 위해 속기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A 씨는 취업을 위해 국정원 홈페이지를 검색하다 비밀요원에 대해 알게 됐다.

경찰 조사내용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직원 사칭 보도를 접했던 그녀가 “지난 99년 5월경부터 국정원 직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담당형사는 “A 씨는 평소 친구나 가족들 사이에서 과시하기를 좋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을 시작한 A 씨는 국정원 요원으로 보이기 위해 ‘품위유지’ 명목으로 씀씀이가 커졌다. 그녀는 급기야 “국정원이 비자금으로 받은 기업어음을 헐값에 할인해 고수익을 올리게 해 주겠다”며 고교 동창들을 속였다. 이에 고교 동창 C 씨(31)를 비롯해 지난해까지 친구·친인척 5명에게 3억여원을 받아 챙겼다.

경찰은 A 씨가 마구 사용한 카드빚 압박으로 인해 “국정원서 필요한 자금인데 융통해주면 높은 이자를 주겠다”, “고위직들이 받은 뇌물로 받은 주식을 싸게 사 주겠다”며 동일한 피해자 5명에게 4억원을 더 갈취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한 명당 1억이 넘는 돈을 받아 챙긴 셈이다.

철저한 ‘이중생활’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사기행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 25% 고리를 일정 기간 되돌려 주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속이기 위해 자신의 아이 백일잔치 때나 본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국정원 직원 일동’이라고 적힌 화환을 본인이 직접 보내기도 했다. 또 그녀는 아내가 지각할까봐 걱정하며 늦잠을 깨우는 남편에게는 “특수 업무를 하는 비밀요원이어서 늦게 출근해도 되고 일이 있으면 호출이 올 것”이라 둘러댔다.

이런 행각 때문에 A 씨는 가족들의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또 주변 사람들이 의심할 것을 우려해 인터넷에서 내려 받은 국가정보원법과 보안규정을 보여주며 비밀 엄수를 다짐받았다. A 씨가 이렇게 갈취한 돈 7억원은 그녀의 ‘이중생활’을 영위하는 ‘품위유지비’로 쓰였다.

그러나 곧 A 씨의 사기행각은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C 씨는 고수익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고 가져간 돈을 A 씨가 되돌려 주지 않자, 사칭을 의심했고 곧 경찰에 신고했다. C 씨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A 씨가 계속해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담당경찰은 “현재 경찰에 밝혀진 피해자 5명 외에 또 다른 10명은 아직도 A 씨를 국정원 직원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며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영은 기자 kye30901@naver.com


[인터뷰] 국정원 관계자 D 씨의 ‘다른 관점’
“그녀, 진짜 비밀요원일수도…”

“경찰이 제시한 모든 증거물, 국정원서 조작했을 가능성”

지난해 11월 ‘국정원 사칭 부동산 사기사건’에 이어 불과 3개월만에 또 다시 국정원 사칭 사기사건이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실제 국정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관계자를 통해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국정원사칭사기’의 원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국정원 사칭, 왜 하나.
▲정부의 권력기관이다 보니 그런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다. 이를 이용해서 뭔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오래 전부터 ‘안기부’ 출신이라면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인 것 같다.

-국정원 사칭 사기는 액수가 항상 크다.
▲국정원 자체가 자잘한데 연연하지 않는 곳이고 과거 ‘안기부’에 대한 향수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국정원 비밀요원을 사칭하는 범인들도 이 사실을 악용하는 것 같다.

-실제 국정원 비밀요원들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나.
▲국정원 요원들은 절대로 자신의 신분이나 소속을 밝히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국정원 요원들은 정보를 입수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해외 조정관’들은 국외 다른 나라들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뛰고 국가 안보를 위해 일한다. 그만큼 신분노출이 되면 요원들의 생명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우방국에서 활동하는 조정관이라 해도 정보를 입수하고 조사하는 일은 위험한 것이다. 국정원은 소속 공무원들에게 신분증이나 출입증을 발급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항상 염두 해두고 이번과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사건 용의자가 실제 국정원 요원이었다면.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그만큼 책임과 의무가 많이 따른다. 만일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실제 국정원 소속이었다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고 오지 않았을까. 국정원 요원들은 ‘비밀유지 공소시효’라는 것이 있다. 요원 직을 그만 두고 나서도 절대 국정원에 대한 정보를 누설할 수 없게끔 돼 있는 규정이다. 아무리 면책권을 가진 요원들이라지만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행위는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다.

-A 씨가 실제로 비밀요원일 가능성도 있나.
▲좀 엉뚱한 질문이지만 A 씨가 비밀요원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비밀요원은 그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실제 요원이라면 경찰에서 제시한 모든 증거물은 국정원서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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