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만 골라 ‘묻지마 폭력’, 결국 살인


 

긴 생머리란 이유만으로…
머리 길고 얼굴 닮으면 무조건 따라가 폭행


변심한 옛 애인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엉뚱한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지난 5년여간 과거 헤어진 애인과 닮은 긴 생머리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이른바 ‘묻지마 폭력’을 휘두른 박모(33·회사원) 씨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부산 사상경찰서 강력2팀은 지난 12월 17일 길가에서 갑자기 나타나 쇠 둔기로 머리를 내려쳤다는 폭력사건을 접수받았다. 범행의 내용이 정신이상자나 전과자의 소행이라 판단돼 유사 전과가 있는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했다.

지난 21일 경찰의 수사결과 박 씨의 범행이 드러나 폭력, 살인, 강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사건의 전모를 알아봤다.

부산 사상경찰서 강력2팀은 지난 12월 17일 오후 11시쯤 부산 상사구 덕포체육공원 앞을 지나던 피해자 박미리(가명·19) 양을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박수덕(가명·33) 씨를 검거했다. 저녁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선 박 양.

공원 앞을 지나던 중 갑자기 나타난 행인이 묵직한 둔기로 머리를 수 차례 내리친 후 달아났다. 쓰러져 있던 박 양은 주위의 도움으로 부산 부산진구 모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응급실에서 후두부 손상으로 중퇴에 빠져 치료를 받던 박 양은 지난 21일 밤 11시 20분쯤 악성 뇌부종 증상으로 결국 사망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박 씨가 범행 당시 사용한 도구는 길이 50cm, 무게 2.5kg의 철제공구였다. 이 밖에도 그는 유사한 수법으로 지난 8월 26일과 12월 4일 등 총 3차례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혼재성 인격장애

고학력자인 피의자 박 씨는 1999년 당시 A대학원 1년생으로 재학 중이었다. 그는 재학시절 긴 생머리를 자랑하는 여자친구와 각별한 만남을 갖고 있었다. 둘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조금 지난 1999년 가을 어느날 여자친구의 배신으로 둘은 헤어지게 됐다. 이에 충격을 받은 박 씨는 그 이후 배신한 여자친구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에 그녀와 닮은 긴 생머리를 한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1999년 그는 여자친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길가는 여성을 따라가 폭력을 휘두르는 등 성폭행 혐의로 검거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2001년 출감한 박 씨는 또 다시 긴 생머리 여성을 대상으로 폭행죄를 저질러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전과2범이 됐다.

당시 김 씨는 경찰에서 “예전에 변심한 애인 때문에 여자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길가는 여성을 골라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1999년 범행 당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판단으로 공주치료간호소에 정신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혼재성 인격장애였다. 혼재성 인격장애란 정신병의 일종으로 분열성 인격장애와 비사회적 인격장애가 겹친 증세다.

긴 생머리 여성만 겨냥

범인 박 씨는 지난 17일 있었던 폭행사건 당시 과거처럼 폭행만을 한 것이 아니고 금품도 갈취했다.

피해자 박 양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치는 일명 ‘퍽치기’를 한 후 현금 2만4.000원을 빼앗았다. 그녀는 두개골이 함몰되어 병원에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범인 박 씨는 박 양 이외에도 지난 8월 26일 오전 1시 20분쯤 부산 사상구 덕포동 골목길에서 한수진(가명·26) 씨를 쫓아가 폭행을 저질렀다. 주먹으로 안면을 마구 때려 전치6주의 상해를 가했고, 현금 22만원이 든 지갑을 빼앗아 달아났다.

또 지난 4일 자정쯤에도 부산 사상구 덕포동 모 아파트 정문 옆 노상에서 최연실(가명·22) 씨를 뒤따라가 주먹으로 얼굴을 내려치는 등의 행위로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혔다.

경찰은 이와 같은 피해신고를 받고 동일지역에서 유사한 수법으로 범행이 일어나는 것에 주목, “정신이상자나 전과가 있는 사람의 소행일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이에 유사전과가 있었던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망을 좁혔다.

부산 사상경찰서 강력2팀의 관계자 중 1999년 박 씨를 검거한 형사는 박 씨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판단돼 용의자로 지목했다. 형사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박 씨의 집을 찾아가 출석을 요구해 조사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사 당시 박 씨의 신발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과학수사연구소에 박 씨의 DNA와 피해자 여성의 DNA를 의뢰했다. 결과는 일치했고, 박 씨는 바로 검거됐다.
1999년 정신질환이 있었던 박 씨는 지금도 혼재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

경찰은 “이 병은 잠을 자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갖고 있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의도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 역시 혼재성 인격장애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박 씨)은 범행 사실을 기억 못 한다”고 했다.

또 박 씨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부정도 안하고, 인정도 안하고 있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lms9420@naver.com




범인 박씨는 이런 인물
평범한 회사원의 두 얼굴

범인 박수덕(가명·33) 씨는 검거직전까지 금형설계사로 근무하는 회사원이었다. A대학원은 범죄사실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아 졸업하지 못했지만 출감한 이후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현재 미혼이며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다. 1남2녀 중 장남이다.

박 씨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거주하며 집 부근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그가 앓고 있는 혼재성 인격장애의 경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동하게 된다.

박 씨는 “지금은 옛 여자친구에 대해 다 잊었다”라고 말하지만 아직 무의식중에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옛 애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뒤따라가 폭행을 일삼다 결국 피해 여성을 죽음까지 몰아 살인자가 됐다.

1999년엔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을 시도해 강간미수로 검거. 2001년엔 ‘묻지마 폭력’으로 검거. 이번엔 폭력에 살인까지 추가되었다.

범행도구로 보았을 때는 치밀하게 준비 한 것 같지만 그는 쇠 둔기 이외에도 돌맹이, 방망이 등을 이용해 손에 잡히는대로 범행도구로 이용했다.

이유 없이 당해야만 했던 피해자 가족은 억울함에 울분을 토해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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