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덕에 군 기밀 입수?


 

30매분량 보도자료 군사 2·3등급 기밀 총망라
무기 사용지침서 및 미사일 보유수량 상세 명시

‘알맹이’ 꽉 찬 군사기밀자료가 한 시민단체를 통해 여실 없이 공개돼 논란이 일 전망이다. 지난 12월 5일 열린 ‘평화의 섬 제주, 해군기지 건설 타당한가’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참여연대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기지 건설 반대 이유에 대해 피력했다. 또한 참여연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A4 30여매 분량의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이 문서에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뿐 아니라 군사 2·3등급 기밀에 속하는 내용 등이 총망라돼 있어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군사비밀자료가 유출된 경위와 문서에 담긴 내용 등을 꼼꼼히 살펴봤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참여연대가 군사 2·3급 기밀자료를 얻게된 데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지난 5일 참여연대가 공개한 문제의 자료는 대부분 미국 군 당국이 현지 청문회를 통해 발표한 내용으로 주한미군에 해당하는 것만을 발췌해 편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세부 사항을 습득한 참여연대는 제주 해군기지에 ‘이지스함’이 정박하게 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이지스함 어뢰에 대한 결함을 설명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참여연대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군 당국이 소지한 이지스함의 결함은 크게 두 가지로 ▲어뢰 발사관에 사용되는 ‘장미유연료2’의 유해성과 ▲근접방어무기인 팔랑크스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 등이다.

군사기밀 줄줄 샌다

지난 5일 참여연대는 토론회를 통해 “이지스함의 어뢰 발사관에는 액체추진제 가운데 하나인 ‘장미유연료2’가 사용되는데 이것을 만일 삼키거나 흡입할 경우 유해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하며, 연료의 유해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참여연대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장미유연료2’는 부정맥·후두염·고혈압 또는 저혈압을 가진 대원들이 관리할 수 없으며, 연료에 노출될 시 두통을 동반한 코 염증을 유발한다. 때문에 ‘장미유연료2’를 관리하는 대원들에게는 응급호흡장치나 응급항공방독면이 제공된다.

또한 연료 정화 작업시 1회용 작업복 착용은 물론 작업복의 앞치마 또한 전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커야하며, 연료 정화시 사용했던 1회용 작업복과 고무장갑 등은 사용 후 즉각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문서는 적시했다.

참여연대는 또 이지스함의 근접방어무기인 팔랑크스를 논하며, 방사능 무기로 분류되는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2001년 미국 친우봉사회 하와이지부 카일카지히로 간사가 미 태평양사령부 총사령관인 블레어 제독에게 요청한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인용 “주한미군은 ▲수원기지에 136만181발 ▲청주기지에 93만3,669발 ▲오산기지에 47만4,576발을 보유하고 있어 거의 280만발의 열화우라늄탄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며 “주목할 점은 이번에 확인된 게 주한미군 공군이 보유한 30밀리 열화우라늄탄의 보유 현황으로 주한미육군이 보유한 120밀리 열화우라늄탄 수까지 합할 경우 보유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참여연대는 군 당국의 무기 관리체계에 대해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문건에 따르면 1997년 보관 중이던 열화우라늄탄이 습기로 인해 부식돼 콘테이너 6개를 손상시켰고, 1개에는 아예 구멍까지 났다. 또한 2003년까지 오산기지에서만 2만4,696발의 열화우라늄탄이 분실되기도 했다.

관리체계에 대한 심각한 사례로 참여연대는 1997년 2월 경기도 연천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꼽았다.

참여연대는 문서를 통해 “과거 미군기지 뒤편 폐폭발물 처리장에서 행정착오로 120밀리 열화우라늄탄 1발을 파괴처리 했다”며 “이 폐기장의 한 가운데로 하천이 흘러 한탄강으로 유입되는데 제대로 된 환경영향조사도 없이 이 사건은 유야무야 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해군 보안의식 구멍

하지만 참여연대가 발표한 이 같은 내용은 군사 2급 비밀 가운데 ‘전략무기 또는 유도무기의 사용지침서 및 완전한 제원’에 해당돼 위헌소지가 크다.

군사기밀보호법시행령 제3조 제2항 군사기밀 등급구분에 관한 세부기준에 따르면, 군 당국이 소지한 탄도 미사일·원자력 잠수함·전략 폭격기 또는 무선·레이더·적외선 등 전쟁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기계류는 그 치수나 무게는 물론 성능과 특성을 가리키면 안 된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협동사무처 관계자는 “자기네들이 국가기밀이라고 지정했다해도 국가 재산이 도난·사라졌는데 어떻게 비밀이 되느냐”며 “도둑이 제 발 절인다는 격으로 정말 미사일을 분실한 게 맞긴 맞는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토론회 당시, 현장에서도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시각은 없었다”며 “만약 우리가 발표한 내용이 국가기밀에 속한다면 소송 걸라고 하라”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하지만 본지가 지난 7일 국방부에 확인해 본 결과, 군 당국은 참여연대 군사자료 유출 의혹과 관련 아무런 인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해군 측에 연락을 취해보라는 답변뿐이었다.

지난 12월 15일 기자의 제보(?)로 문제의 문건을 살펴본 해군 공보 관계자는 “참여연대가 공개한 자료는 대부분 미국 청문회 등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우리나라 것만 추린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선 군사기밀에 속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라 미국을 통해 얻어낸 자료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군 관계자는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군인의 입장에서만 봤을 땐 국익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님에도 이러한 사실을 유출한 것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군기 빠진 군 기밀보안 실태
역 화장실에서도 기밀 자료 발견

지난해 8월 민간인 이모(60) 씨는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도로상에서 군 작전계획 등 군사 2급 기밀서류 5종이 철해진 바인더를 발견, 관계 기관에 신고했다.

기무부대 조사 결과 이 서류 바인더는 육군 모 군단 소속 A 중사가 한·미 연합 을지포커스렌즈(UFL) 연습 사전대비 훈련 때 부주의로 잃어버린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해 4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야산에선 산나물을 채취하던 주민이 군사지도 3매와 투명도(병력·시설 등을 그린 투명한 비닐) 1장을 발견했다. 이 지도는 산악훈련 중이던 인근 부대에서 분실한 것으로 추정됐을 뿐 어느 부대, 누가 유실했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국군기무사령부는 최근 수년간 군 기밀 취급자의 부주의로 각종 기밀자료나, 기밀은 아니지만 보안을 요하는 문서나 지도가 유출돼 도로상이나 야산·승용차·PC방 등에서 민간인에 의해 발견된 사례를 파악,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기무사가 최근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경기도 구리시의 한 PC방 컴퓨터에서는 군사기밀이 아닌 일반 군사자료 2건(A4용지 10매 분량)이 발견되기도 했다.

육군 모 군단 소속 B 상병 등 2명이 업무를 보기 위해 시내에 나왔다가 소속 부대에 급히 보고할 문서를 작성하느라 PC방 컴퓨터를 사용한 뒤 자료를 삭제하지 않고 부대로 복귀했던 것.

서울 양화대교 인근 한강 둔치 주차장의 승용차 안에서 군사지도가 발견된 적도 있다. 산책을 나온 시민의 신고로 발견된 이 지도는 10만 분의 1 축척 군사지도. 육군 모 사단 C 대위가 부대서 가지고 나와 개인 승용차에 장기간 방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보다 앞선 2001년에는 심각한 기밀서류 분실 사례도 있었다.

2001년 육군 모 사단 작전처 지휘통제장교인 D 중위는 군 인쇄소에서 군사 3급 기밀인 사단 작전 예규 인쇄본을 군용 승용차 뒷좌석에 싣고 가다가 일부를 유실했다. 승용차가 도로상 과속 방지턱을 통과하면서 싣고 가던 서류가 흩어졌고 이를 정리하기 위해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뒷문을 여는 순간 서류가 차량 밖으로 쏟아졌다.

D 중위는 운전병과 함께 황급히 도로 위에 흩어진 서류를 주웠으나 도로변 숲 속으로 날아가 버린 서류를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민간인이 발견해 신고했다.

2000년 8월엔 경기도의 한 역 화장실에서 역무원이 군사자료가 수록된 군용 디스켓 5장이 버려진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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